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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Aug 16. 2020

91. 그래, 나는 지금 열등감이 폭발하고 있다

<그래, 나는 지금 열등감이 폭발하고 있다>


싸이월드에 이어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그리고 현재는 인스타그램으로 내 일기장은 옮겨졌다. 인스타그램은 다른 플랫폼과 달리 글보다 이미지, 즉 사진이 중심을 이뤘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어쩌다 한번 하는 외식, 어쩌다 한 번가는 카페, 어쩌다 한 번가는 여행지에서 사진만 주구장창 찍어댔다. 수백 장 찍어 잘 나온 사진 한 장, 심지어 그마저도 얼굴이 거의 가려져있는 뒤태 사진이나 풍경이 주가 되는 사진이 선별되어 포스팅됐다. 그러고 나서 나는 내 일기장을 흡족하게 바라보곤 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 속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동화 같아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워서 나는 더더욱 만족감을 느낀다.


싸이월드부터 시작해서 인스타그램까지, 내게 SNS는 나만의 집을 꾸미는 기분을 주었다. 사람들이 누르는 '좋아요'는 내가 꾸민 집이 아름답고, 예쁘고, 동화 같다는 사실을 인정받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엄청난 감정의 폭풍우 한가운데 위태롭게 서있다. 나는 내 집을 예쁘게 꾸미고 나자, 다른 사람들의 집이 궁금해졌다. 초단위로 인스타그램에 업데이트되는 사진들을 바라본다. 보일 듯 말 듯 명품 가방을 들고 있는 사람들, 또렷한 이목구비에 살짝 짓는 미소가 너무도 매력적인 사람들, 감히 생각조차 못한 고급 휴양지에서 코로나를 피해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육감적인 몸매가 감탄을 자아내는 사람들, 본인만의 감각적인 센스로 멋지게 차려입은 사람들. 나는 오감을 자극하는 사진들로부터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집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뭐랄까.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지금의 내 감정을. 내가 만들어놓은 집은 보기 좋게 꾸며놓은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뼈아프다고 해야 할까. 내 인스타그램 속 사진들도 내 최근의 삶 중 가장 '베스트'만 모아두었는데, 비교해보니 초라하다고 해야 할까. 재력도 돈도, 명예도 그 무엇 하나 가진 것 하나 없어 보이는 내가 볼품없다고 해야 할까. '애매하게 잘하던 공부 대신 운동을 하고, 외모를 가꾸었으면 지금의 내 모습은 조금 달라졌을까'라고 생각한 나 자신이 조금 불쌍하달까. 아니라고, 외면보다 내면이 중요하다고 외쳐대는 나 자신이 조금 안쓰럽다고 해야 할까.

그래, 인정하자. 나는 지금 열등감이 폭발하고 있다. 타인과의 비교, 열등감은 쓸모없는 것이라며 꾸짖던 수많은 책들과 매체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나는 열등감에 강력하게 사로잡혀있고, 이를 벗어나라는 수많은 조언들은 전부다 내 보잘것없는 상황을 둘러대는 변명처럼 들렸다. 이런 내 상황에 'SNS를 끊으세요'라고 손쉽게 대답하는 친구들에게 '그래도 SNS는 하고 싶은데'라고 말하면 열등감을 계속 느끼면서도 SNS를 끊을 수 없는 SNS 중독자가 되어버리는 걸까? 그런데 말이지, 열등감이 나쁜 건가? 타인과의 비교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건가?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말했다 '개인의 외모는 삶의 가장 비민주적인 부분에 속한다. 외모는 마치 복권과 같고, 여러분은 아마 당첨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일에 당신은 어떻게 손 쓸 방법이 없으며, 사람들이 그렇게 생긴 건 그들 탓이나 공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 생긴 것뿐이다.' 팩트 폭격기 같은 그의 말에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 뒤통수를 아주 시원하게 팍 내려치는 그의 말에 오히려 하하호호 신이 난다.


열등감은 부정적인 것이며, 가지지 말아야 할 감정이 아니다. 타인과의 비교는 부정적인 것이며,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위가 아니다. '그래서는 안된다'라는 부정적인 감정이 오히려 나를 더 자괴감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저 현실을 훌훌 털어 인정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부정적인 감정의 늪에서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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