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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Aug 21. 2020

92. 한 숨의 재로 떠나, 한 그루의 나무로

<한 숨의 재로 떠나, 한 그루의 나무로>


햇빛이 쨍쨍한 오늘,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손님을 맞기 위해 카페 문을 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딸랑'하고 첫 손님이 들어온다. "선생님" 나를 꼭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손님. 우리 엄마뻘의 50대 중후반의 단골손님이다. 나이의 권위를 내려놓으니 우리는 세대의 벽을 허물고 친구가 되었다. 나는 활기찬 목소리로 손님을 맞다가, 이내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손님의 눈에는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 서려있었다. 손님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 조차도 가슴이 저릿저릿해 눈물이 왈칵 정도였다.


안부를 물을 겸 건네는 한 마디, "요새 왜 안보이셨어요. 잘 지내셨죠?" 그 질문에 대한 손님의 대답은 "선생님, 나 사실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 말 한마디가 내뱉기 힘들어 파르르 떨린다. 손님은 감정을 갈무리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쓴다. 그러나 이내 둑 터지듯 툭툭 쏟아지는 눈물에 어찌할 바를 몰라한다. 어떠한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음을 알기에 그저 마주 보고 같이 울어본다. "나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이제 마음 다잡고 일상으로 돌아가려고요. 그래서 커피 한잔 하러 온 건데. 내가 주책이네."


손님에게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내어드린다. 그리고 여전히 떨리는 그 손을 마주 잡아본다. 오늘로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이주가 되었다는 손님. 생명연장술을 하며 누워있는 어머니를 보다가 '이제 맞는 것인가'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끝내 보내드리는 길을 선택했다. 펑펑 눈물을 눈물을 흘릴 만큼 흘리고,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도 눈물은 계속 나온다. 청소를 하다가, 요리를 하다가, 장을 보다가도 울컥울컥 눈물을 훔친다. 일상이 눈물로 얼룩진 지난 2주간의 시간. 그리고 남아있는 앞으로의 시간. 그 슬픔이 나에게까지 전이되어 온 가슴을 물들인다. 얼마나 힘들고 슬픈지 짐작조차 할 수 없기에, 앞으로 살아가야하는 긴 시간에서도 '어머니'는 빠질 수 없는 존재임을 알기에 그저 같이 눈물을 흘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가 생각난다. 투석으로 인해 지칠 듯이 지친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애원했다. "제발, 이제 그만할래. 힘들어" 자식들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투석을 멈추지 못했다. 생명 연장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못 놓았다. 엄마를 한 시간이라도, 하루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도저히 놓지 못했다. 할머니는 날이 갈수록 쇠약해졌고, 기력이 있을 때마다 "이제, 그만. 힘들어"라고 말했다. 생명력이 다한 모습, 고통으로 일그러진 모습, 색색 거리고 내뱉는 가는 숨소리에 결국 할머니를 보내드렸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5년이 지나서야, 아빠는 나와 동생을 불러두고 이야기했다. "이제 와서 이야기하지만, 나와 엄마는 갈 때 되면 병원 치료를 하지 말아 다오. 결국은 내 욕심 때문에 할머니의 마지막을 그렇게 보내드리고 지난날을 죄책감에 살았다. 아빠와 엄마는 슬픔에 사로잡혀 허덕이는 마지막이 아닌, 생일파티 같은 마지막을 보내고 싶단다.  그저 한 숨의 재로 떠나 그저 한 그루의 나무로 다시 태어나고 싶단다. " 나와 동생은 "그런 말, 하지마!"라고 소리치며 펑펑 눈물을 흘렸었다.


나의 죽음, 그리고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고 싶지도 않다. '죽음'은 늘 회피하고 싶고, 생각하기 조차 두려운 존재였다. 그러나 '죽음'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살면서 여러 번 겪어야 하는 인생의 필수과정 중 하나였을 뿐임을 깨닫는다. 할머니를 보내고 나서 생의 마지막을 생각해보게 된 아빠, 엄마는 내게 그들의 마지막은 어땠으면 하는지를 말해주었다. 아빠와 엄마 이기전에 한 개인으로서 살아온 그들에게 마지막 또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생의 주도권을 드리고자 한다. 마지막이 곧 새로운 출발인 것처럼, 즐겁게 생일파티를 한 뒤 한 숨의 재로 떠나 그저 한 그루의 나무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저 김병국은 85세입니다.

전립선 암으로 병원생활을 한 지 일 년이 넘었습니다.

병세가 완화되기보다는 조금씩 악화되고 있습니다.

전립선암이 몸 곳곳에 전이가 되었습니다.

소변 줄을 차고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습니다만 정신은 아직 반듯합니다.

죽지 않고 살아있을 때 함께하고 싶습니다.

제 장례식에 오세요.

죽어서 장례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손을 잡고 웃을 수 있을 때 인생의 작별인사를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화해와 용서의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고인이 되어서 치르는 장례가 아닌 임종 전 가족, 지인과 함께 이별 인사를 나누는

살아서 치르는 장례식을 하려고 합니다.

검은 옷 대신 밝고 예쁜 옷 입고 오세요.

같이 춤추고 노래 불러요.

능동적인 마침표를 찍고 싶습니다.

 - 살아서 치르는 장례식, 김병국 씨의 초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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