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매한 인간 Sep 01. 2020

93. 사소한 실수정도는 해도 돼.

<사소한 실수정도는 해도 돼.>


에어컨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다. 전기세를 한 푼이라도 아끼고 싶어서 리모컨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손님이 없는 카페에 나 혼자만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으니 참 처량 맞고, 참으로 추웠다. 카페도 예약제처럼 시간 맞춰 손님이 와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손님이 안 올 때는 에어컨을 끌 수 있잖아. 코로나는 무더운 여름에 종식될 거라더니, 올해 안에는 끝날까.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때 손님 두 분이 손으로 부채질을 연신 하며 카페로 들어온다. "사장님, 오랜만이네요. 잘 지냈어요?" 마스크 안에서 웅얼웅얼 반갑게 인사하시는 손님께 환하게 웃어 보인다. 자영업자가 아플 때는 손님이 약이라더니, 참말이구나. 에어컨 안 끄길 잘했다.

 

속까지 시원해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내려 손님께 가져간다. 손님들은 오늘 먹은 점심메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늘 손님들의 점심메뉴는 콩국수였나 보다. 

"그 집 콩국수는 언제 먹어도 증말 맛있다니까."

"난 국물이 걸쭉한 게 좋던데 거긴 좀 밍밍하던데?"

"그런가? 그나저나 오늘 저녁에는 뭐 먹을까? 배부른데 벌써 저녁 메뉴 걱정되네. 하하"

맞은편 손님도 하하호호 웃음꽃이 피었다. 세상에서 제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게 식사메뉴라며 맞장구쳤다.

"그때 가봤던 한식집 갈까? 8천 원인데 반찬이 다양해서 좋던데. 집밥 느낌 나고."

"이번엔 새로운데 좀 가보고 싶은데.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걱정도 되고 사람 없는 데로 가자."

"난, 별로. 도전하기 싫은데."


손님들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무려 1시간 동안 저녁 메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닭갈비를 상추에 올려 쌈장을 올리고, 마늘을 올려 야무지게 싸 먹으면 맛있다는 말, 광주에서는 튀김을 상추에 싸 먹는 걸 아냐며 상추튀김을 집에서 만들어먹어 보자는 말, 곱창은 구이랑 전골도 맛있지만 훈제도 맛있다는 말을 나누었다. 아, 맛깔나게 이야기를 하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침이 고였다. 갑자기 배에서 장기들이 요동을 친다. 나는 저녁에 뭘 먹을까 진지하게 고민해본다. 닭갈비? 콩국수? 곱창전골? 치킨? 피자?


그러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나는 여행을 가거나, 식당을 가면 '모험'을 하는 스타일인지, 아니면 '안전'을 택하는 스타일인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나는 아무래도 후자인 것 같다.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 한정된 돈을 두고 도전하고 싶지 않았다. 검증된 숙박시설, 검증된 여행지, 검증된 관광지, 검증된 맛집에 가곤 했다. 식당에 가서도 이색적인 메뉴보다 내 눈에 익숙한, 내 입에 익숙한 메뉴를 골랐다. 그런데 그게 이내 아쉬워졌다. 코로나가 발생하고 나서 좁아진 내 세상을 들여다본다. 하루의 짧은 여행지, 한 끼의 식사를 고르는 그깟 사소한 실수가 두려워 한정된 공간만을 살아온 나. 조금만 더 세상을 넓게, 다양하게 살아볼걸. 그런 아쉬움이 조금 묻어 나오는 하루다.


집에서 상추튀김을 만들어 먹어보았따...



작가의 이전글 92. 한 숨의 재로 떠나, 한 그루의 나무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