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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Sep 09. 2020

94. 일회(一回)라는 무참한 말

<일회(一回)라는 무참한 말>


오늘은 택배가 많이 왔다. 그것도 부피가 큰 것들로. 진짜. 무진장 많이.

찬 음료용 일회용 컵과 뚜껑, 따뜻한 음료용 일회용 컵과 뚜껑, 음료 담는 비닐 캐리어, 빨대 등등.

코로나 이후로 일회용품 소비가 부쩍 늘었다. 시청 위생과에서는 테이크아웃 컵을 제공하라고 권고문을 보내왔다. 손님들도 점차 유리컵을 사용하기 부담스러워했다. 간단히 마실 물을 찾는 손님들에게도 유리컵 대신 종이컵이 헤프게 나갔다. 그러다 보니 예쁜 식기와 유리컵에는 먼지가 쌓인 지 오래다.  

카페에서 자주 쓰이는 일회용품들


손님들이 나간 테이블을 둘러본다. 냅킨 10장, 빨대 5개, 빨대 포장비닐 5개, 일회용 컵 5개, 종이컵 3개, 컵홀더 5개. 20분 남짓한 시간 동안 한 테이블에서 다섯 명의 손님이 사용한 쓰레기의 양이다. 아이스 음료를 마신 손님들은 항상 냅킨 한두 개를 사용한다. 얼음이 녹아 컵 밑으로 동그란 물 웅덩이를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빨대와 빨대를 포장하고 있는 비닐. 그리고 빳빳한 홀더까지. 일회용품으로 시작해서 일회용품으로 끝나는 것들. 일회(一回)라는 말은 얼마나 무참한가. 목적을 다하면 버려야 한다는 말이 오늘따라 받아들이기 버겁다. 


손님들이 다 나가고 수거한 일회용 컵을 뽀독뽀독 씻는다. 컵의 바닥을 퐁퐁 뚫어 수세미 받침대로 써보고, 새끼 친 스투키도 옮겨 심어 본다. 100원, 500원 잔돈 보관하는 통으로도 써본다. 이렇게 저렇게 아무리 애를 써도 고작 5개의 컵을 썼을 뿐이다. 한 테이블에서 나온 컵만을 활용하기도 이렇게 버겁다. 결국 나머지 일회용품들은 전부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고작 한산한 동네 카페에서 이 정도인데, 전국의 7만여 개 이상의 카페에서 배출하는 쓰레기 양은 어느 정도 될까?


최근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손님의 수도 줄었다. 늘 별다방 텀블러를 들고 다니던 손님께 의아해서 여쭤보니 "버스도 타고, 여기저기 사람들 만나며 다니는데 텀블러를 들고 다니기 두려워서요. 환경을 생각하면 그러면 안되지만, 너무 불안해서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 손님의 마음이 충분히, 너무나도 이해가 가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뿐이다. 


텀블러 사용을 강요할 수 없다. 일회용품의 사용을 금지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감히 손님들께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빨대는 안 주셔도 돼요', '컵홀더는 안 써도 충분해요'라는 말 한마디 해보는 건 어떨까요?

이 말 한마디만으로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을 다하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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