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마지막 주는 애매한 카페의 셀프 점검이 있는 날이다. 카페에는 생각보다 전자제품이 많이 쓰인다. 커피머신부터 시작해서 테이블 냉장고(가로로 긴~냉장고), 쇼케이스 냉장고, 제빙기(얼음을 만든다), 토스터기, 전자레인지, 믹서기, 와플 반죽기, 냉난방기, 카드결제 단말기 등등등. 이러한 전자제품들은 주기적으로 잔고장이 난다. 커피머신에서 갑자기 뜨거운 물이 안 나온다던지, 테이블 냉장고에 냉동 설정이 꺼진다던지, 쇼케이스가 시원하지 않다던지 등등등. 카페를 한참 영업하고 있는 중에 전자제품 하나가 고장 나면, 그 날의 장사는 눈물을 머금을 수밖에 없다. 동네 카페라 손님도 적은데, 적게나마 온 한 명의 손님에게 하나의 메뉴를 못 판다면 얼마나 큰 손해인가!
이러한 기기들의 점검이 끝나고 나면, 다음으로 아주아주 중요한 카페 재료들의 유통기한 관리가 있다. 아무래도 식품을 다루다 보니 유통기한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유통기한은 언제나 나를 슬프게 만든다. 카페의 재료는 정말 가지각색이다. 메뉴판을 보면 나열되어있는 수십 개의 메뉴들을 위해 구비되어있는 수십개x3배의 재료들이 있다. 가지각색의 파우더, 시럽, 말린 찻잎, 원두, 우유, 휘핑크림, 생크림 등등등. 하나하나 뒤적거리며 정리하다 보니 곧 폐기 처분해야 할 재료들이 꽤 많이 보인다. 헤이즐럿 시럽, 헤이즐럿 파우더, 바닐라빈 시럽, 바닐라빈 파우더, 말차 파우더, 흑임자 파우더, 카페 시럽 2통, 우유 6통. 하나하나 가격을 따져보면 2만 5천 원, 3만 9천6백 원, 2만 1천6백 원, 3만 9천6백 원.... 계산기를 두들길수록 더 구슬퍼지니, 이쯤 두들기다 포기한다.
처음 유통기한이 지난 카페 재료들을 폐기할 땐 슈퍼, 파워 당당했다. 유통기한이 지났네? 그럼 폐기해야지. 시럽은 하수구에 술술 흘려보내고, 파우더는 잘 밀봉해서 쓰레기봉투에 버렸다. 그게 당연한 거니까, 나는 위생을 잘 지키는 카페 사장이니까. 그렇게 자부심을 갖고 버렸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내 지갑이 얄팍해질수록, 하루에 방문하는 손님을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아니, 혹은 하루 매출이 0원일 때가 많아질수록 나는 손을 떨었다. 폐기하는데 눈물이 났다. 없는 돈, 있는 돈 싹싹 긁어모아 사놓은 재료들이 한순간 '쓰레기'가 되자 허탈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는 '먹어도 안죽는다'며 내 뱃속에 콸콸 부어넣었다. 그런데 아무리 내 뱃속에 가득가득 흘려 넣어 봐도, 결국은 다 마시지 못해 버려졌다. 유통기한이 지난 재료들을 집으로 들고 가 음료를 만들어마셔도 다 쓰지 못했다. 나 혼자서는 손님을 절대 대신할 수 없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재료들을 골라서 박스에 담았다. 폐기되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들을 멀건히 바라본다. 쟤들은 누구를 기다린다고 그렇게 카페 한켠에서 자리 잡고 오래도록 있었나. 결국엔 내 뱃속으로, 대부분은 쓰레기라고 불리며 버려질 텐데. 손님을 맞이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카페 재료들이 불쌍해서, 결코 내가 불쌍한 건 아니라고 다독여보며, 그들을 위한 이별노래를 불러본다.
난 니가 싫어 졌어 우리 이만 헤어져
다른 여자가 생겼어 너보다 훨씬 좋은
실망하지는 마 난 원래 이런 놈이니까
제발 더 이상 귀찮게 하지마
그래 이래야 했어 이래야만 했어
거짓말을 했어
내가 내가 결국 너를 울리고 말았어
하지만 내가 이래야만
나를 향한 너의 마음을 모두 정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내 맘을 내 결정을 어쩔 수 없음을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니가 날 떠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너무나도 잘 알기에
어쩔수 없어 널 속일게 미안해 널 울릴게
잘 가 (가지마) 행복해 (떠나지마)
나를 잊어줘 잊고 살아가줘 (나를 잊지마)
나는 (그래 나는) 괜찮아 (아프잖아)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떠나가 (제발 가지마)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은 폐기 재료들.
끝끝내 나랑 헤어지기 싫다고,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엉엉 울더니 결국 우리 집에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