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카페&서점을 보면 답답한 마음만 한 가득이다. 이 공간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정이 쌓이면 쌓일수록, 짐도 쌓인다. 여길 봐도 한가득, 저길 봐도 한가득이다. 테이크아웃 컵은 1,000개씩 대량 구매만 가능하기 때문에 박스가 무척이나 크다. 한아름 다 안기지도 않는 이런 박스가 세 개다. 테이블보가 깔려있는 테이블의 밑에는 냅킨, 화장실용 화장지를 시작으로 손소독제, 물티슈, 카페용품이 한가득 쌓여있다. 아우, 답답해. 손을 걷어붙이고 오늘 하루는 열심히 정리해보자고 마음먹는다. 이리저리 짐을 옮기고, 겹치고 힘겹게 테트리스를 해낸다. 이제 얼추 마무리가 되었나 하고 주변을 바라보니, 위치만 바뀌었을 뿐 부피는 그대로다. '안 되겠다, 이게 최선인가 봐.' 하루를 힘겨이, 그리고 기꺼이 마무리하고 집에 들어간다.
현관문의 센서등이 깜빡이고, 현관 너머로 보이는 집안의 풍경에 또 속이 얹힌다. 집의 동서남북 어디나 묵직 묵직하다. 아이의 장난감, 책, 온갖 서류뭉치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한도 초과야. 눈에 그만 좀 밟혀라' 이런 나의 간절함은 사물들에는 통하지 않는다. 그 자리, 거기에서 오롯이 쓰이길 기다리며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피곤함을 물리쳐본다. 이리저리 짐을 옮기고, 겹치고 힘겹게 테트리스를 해낸다. 이제 얼추 마무리가 되었나 하고 주변을 바라보니, 역시나. 위치만 바뀌었을 뿐 부피는 그대로다.
요새 인테리어가 잘되어있는 카페나 집들이 참 많다. 사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 카페랑 바꿨으면 좋겠다', '우리 집이랑 바꿨으면 정말 좋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하얗고, 고즈넉하고, 정갈하고도 단정한 그런 공간이 참 부럽다. '비움'이 최고의 인테리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언제, 어느 순간 나는 이런 짐들을 그러모으고 있었을까? 카페에 차곡차곡 쌓이는 온갖 도구들과 용품들, 잡다구리 한 것들. 집안에 쌓이는 계절별 옷과 장난감, 책, 그리고 서랍 어딘가에 있는 이름도 생각 안 나는 그 무언가들. 걔네는 언제부터 내 생활 반경에 들어와 있던 걸까?
날이 싸늘해져 코트를 집어 들었다. 단추는 달랑달랑 겨우 시 그 목숨줄을 붙잡고 있었다. '실과 바늘이 어디 있었더라?' 달랑거리는 단추를 보고, 실과 바늘을 찾고, 무시하고 또 살고. 그러기를 2주간 반복하고 나니 이제는 정말 단추가 사라졌다. 나는 코트 안감에 달려있던 단추를 꺼냈다. 그리고 서랍을 뒤적뒤적거렸다. '여기서 쯤 본 것 같은데' 30분여간의 사투 끝에 일회용 반짇고리를 찾았다. 생각해보니 무려 6년 전에 출장지 숙소에서 가져온 일회용품이었다. 옷감과 비슷한 색의 실을 꺼내 서툰 솜씨로 단추를 단다. 바느질이 영 어색해서 쩔쩔맸지만 여차여차 마무리를 해본다. '음, 괜찮네 뭐' 반짇고리를 다시 서랍 깊숙이 넣어둔다. 내가 저 반짇고리를 언제 다시 꺼내보려나?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실과 바늘을 일 년에 몇 번이나 사용할까?' 나는 무려 6년 만에 반짇고리를 찾았는데. 나에게 '실과 바늘'과 같은 물건은 얼마나 많을까? 우리는 왜 일 년에 한 번 쓸까 말까 한 것들을 사두고, 모으고, 수집하고, 쟁여두는 걸까? 우리는 어쩌면 물건을 통해서 불안을 해소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필요할 때 없으면 안 되잖아' 이 마음 하나로, 그 사소한 불안감 하나로 물건을 사 모으는 건 아닐까. '필요할 때 찾으면 있다'는 그런 얄팍한 불안감의 해소를 위해 소비하고, 소유하는 건 아닐까.
미니멀 라이프를 살자고 마음먹어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나를 보니 또 속상하다. 옷장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오지만 '살 빼면 입을 수 있어', '비싸게 줬는데 누구주긴 아까워', '아직 버릴 정도로 옷이 상하진 않은 것 같아'라는 이런저런 핑곗거리만 늘어놓은 채 옷장 정리를 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비단 옷장뿐일까. 점차 늘어나는 서랍과 가구, 수납함을 보면 착잡하다. 물건을 위해 기꺼이 나의 공간을 내어주고, 물건을 위해 기꺼이 그들의 집을 만들어주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집을 비워주라고 말해도 비워주지 않는 그들을 향해 속만 타는 건 나뿐이겠지. 내가 물건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물건이 나를 소유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구차하게 변명을 붙여본다. 불안감을 느끼는 건 우리의 본능이고, 그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물건을 모으는 것 또한 우리의 본능이지 않을까. 그러니 소비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건 우리의 삶의 하나의 방식이지 않을까. 물론, 지나치면 물건에 휘둘리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