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매한 인간 Nov 06. 2021

13. 떡볶이 두개 포장해주세요, 이인분말고요. 두개요

초등학교 3학년 때, 그러니까 나이로치면 10살 때의 일이다. 학교 앞에는 문구점 하나가 있었다. 학교가 시골 중에 시골이라 그 동네의 유일한 문구점이었고, 그곳에는 욕쟁이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초등학생들을 상대하느라 욕을 버럭버럭 하는 게 일상이었다. 불친절한 서비스에도 불구하고 하나밖에 없는 문방구라 할머니에게 굽신거렸는데, 그렇지 않으면 준비물을 팔지 않았다. 그 당시 용돈은 천 원이었는데 꾀돌이, 호박엿 같은 불량식품들은 개당 50~100원씩 했다. 그래도 용돈은 늘 부족했던 터라, 안사고 미적거리고 있으면 할머니한테 혼이 나곤 했다. "돈 없으면 나가라, 이것들아!" 


얼마 뒤 문구점의 공간을 반으로 잘라 세를 내주었더니 분식점이 생겼다. 학교 앞에 분식점이 생기자 학교에서는 난리가 났다. 피카추 돈가스부터 떡볶이까지 없는 게 없는 그곳! 떡볶이는 1인분에 1,000원씩 했었는데, 돈 없는 학생들을 위해서 개당 50원에 팔기도 했다. 떡볶이 철판 앞에는 이쑤시개가 놓여있었고, 원하는 개수대로 찍어먹고 그 개수만큼을 돈으로 냈다. 떡볶이는 정말 군침 돌게 맛있게 생겼고, 내 수중에는 딱 100원이 남아있었다. 나는 분식집에 가서 떡볶이 2개를 먹겠다고 말했다. 떡볶이를 팔던 아주머니는 내게 이쑤시개를 내미셨다. 나는 이쑤시개를 거절하고 "이모, 이거 봉지에 넣어줄 수 있어요?"라고 물었다. 이모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얘가 떡볶이 1인분도 아니고, 떡볶이 2개, 그러니까 떡 2개를 포장해달라고 하다니?' 이모가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질 때마다 나는 움츠러들었다.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건가 봐. 어떻게 하지.' 그때 때마침 옆을 지나가던 할매도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할매는 문방구로 들어가 일회용 봉지를 들고 와서 내게 건넨다. 이모는 어이없어하면서 그 봉지에 떡볶이 두 개를 담아주셨다. 나는 봉지 속 떡볶이가 식을라 얼싸안았다. 그리고 학교에서 집까지 40분이 넘게 걸리는 그 거리를 총총거리며 걸어갔다. 가끔은 뛰기도 하면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방에 들어가 봉지를 열었다. 그렇게 겨우내 하나를 입에 넣어 우물거렸다. 솔직히 떡볶이는 맛이 없었다. 온기도 식은 데다가 고작 떡볶이 두 개를 포장한 비닐봉지에는 떡볶이 국물도 없어서 그저 마른 떡을 먹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 떡볶이 두 알이 무척이나 소중해서 굉장히 아껴먹었다. 작은 떡 하나를 여러 번 나눠서 베어 물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 1학년이 되어서 문구점을 다시금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지갑이 두둑해서 문을 열고 들어갈 때도 당당했다. 욕먹을걸 마음먹고 들어갔지만 의외로 평화로웠다. 할머니는 너무나 친절했고, 또 상냥했다. 그런데 그게 더 어색했다. 문방구에 엄청난 임플레이션이 들이쳐, 꾀돌이 하나에 500원씩 하더라. 헐. 그래도 지금은 갖고 있는 돈이 다르지! 흥청망청 고르고 만원을 건넸다. 할머니는 주섬주섬 앞섬에서 잔돈을 고르더니 한참을 동전을 만지작거린다. "이게 백 원인고, 오백 원인고, 니가 함 봐바라" 다 같은 동그란 동전으로만 보이는 잔돈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할머니를 보니 갑자기 서글퍼졌다. 할머니가 너무나도 연약해 보였다. 세월이 뭐라고.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참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문방구 뒤편 자두나무에서 딴 자두를 한봉다리씩 팔았었는데, 내가 맛있다고 하면 너무도 좋아하셨다. 그리고 자두 두어 알을 더 주며 '맛있게 먹는 모습이 좋네, 더무라'라고 말을 건네기도 했고, 준비물이 뭐였는지 까먹어서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니 몇 학년이고? 그럼 이거 들고 가라'라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욕쟁이 할매'라는 별명 뒤에 숨겨진 할머니의 배려가 있었다. 할머니에게 담긴 그 무시무시한 별명 뒤에 숨겨진 할머니의 진짜 모습이 있었다. 나는 떡볶이를 먹을 때마다 할머니가 생각난다. 도저히 할머니가 건넨 그 일회용 봉지를 잊지 못하겠다. 그 당시 나는 뭐라고 떡볶이 두 개를 포장해달라고 했을까? 왜 허기짐을 참고 그 자리에서 먹지 않았을까?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포장해달라는 나를 본 할머니는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조차 내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몰랐던 그 마음을 할머니는 알았을까? 그 당시 내가 가진 100원이라는 가치가 엄청나게 소중해서, 그리고 그 돈으로 사는 떡볶이마저 너무나 아까워서 그 자리에서 꿀떡 삼킬 수 없었던 내 마음을 알았던 걸까. 초등학생을 많이 상대하느라 '욕쟁이'가 된 할머니가, 사실은 초등학생을 제일 잘 이해했던 게 아닐까. 


그렇게 몇 년이 흐른 후 갑자기 문구점 할매가 보고 싶어 졌다. 문구점은 외관의 어떠한 변화도 없이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무너지기 일보직전인 그런 상태로. 여러 번 갔으나 여러 번 문이 닫혀있었다. 언제 한 번은 문이 열려있어 들어가 보니 한 남자가 "어서 오세요"라고 말을 건넨다. 할머니는 늘 집의 안방과 연결된 마루에 앉아있었는데, 그 뒤편에 앉아있던 아들인 것 같다. 나는 마지막으로 본 할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며 문구점을 한 바퀴 삥 돌았다. 그리고 이것저것 색달라진 매대를 바라보며,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꾀돌이만 한아름 사들고 나왔다. 나에게 이토록 진한 잔상을 남기는 할머니. 별거 아닌 문구점에서의 인연이 이토록 오랫동안 내게 '추억'이란 선물을 줬을 줄이야. 할머니에게 추억만 받은 게 아니라, 삶의 태도마저 선물로 받은 기분이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카페&서점에서의 인연들이 떠오른다. 방문해주는 손님이자 친구들이 떠오른다. 모두가 무척이나 고맙고 또 감사한 하루다.

 

집에가서 먹어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