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빨간 단풍나무가 세차게 흔들린다. 난방기를 가동한 카페&서점 안은 훈훈하다. 이번엔 가을이 짧아 아쉽다. '선선하고도 따스한 그런 가을 날씨에는 냉난방기를 안 틀어도 되는데.' 그런 쿨타임도 없이 겨울이 성큼 다가와버려 우리 집 냉난방기는 쉴 틈 없이 가동 중이다. 윙윙윙.
'딸랑'
오늘의 손님이 입장했다. 아, 자매 사이인 단골손님이다. 늘 그렇듯 아이스 바닐라라테를 두 잔 시킨 손님에게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얼어 죽어도 아이스! 저도 얼죽아파인데 동지네요." 손님들은 키득키득 웃는다. 그리고 에코백에서 주섬주섬 텀블러를 꺼낸다. "하나는 여기 텀블러에 담아주세요" 카운터 위에 올라온 텀블러를 보고 옆에 언니가 말한다. "야, 이건 너무하다. 내가 민망하네." 왜 그러시지 하고 텀블러를 본다. 2L 초대형 텀블러. 언니의 말에 동생은 슬그머니 텀블러를 다시 에코백에 넣으려고 한다. 나는 서둘러 카운터 안쪽에 있는 내 텀블러를 가져온다. "아니에요!! 여기!! 제 텀블러를 보세요!!" 급박한 상황에 목소리가 커진다. 손님 두 명은 한 손으로 다 잡히지도 않는 거대하고도 묵직한 텀블러를 보더니 웃는다. "텀블러 가져오시는 용량대로 담아드리니까, 더 큰 것 들고 오셔도 돼요!"라고 덧붙여본다.
요즘 손님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때마침 컵홀더가 뚝 떨어진 적이 있었다. 카페의 테이크아웃 용품들은 항상 1,000개 단위로 주문해야 하는지라 주문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런 일이 벌어진 거다. 우물쭈물하다 손님에게 "죄송한데 컵홀더가 떨어졌어요. 제가 여기 냅킨으로 조금 감아드려도 괜찮을까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손님은 전혀 거리낌 없이, 그게 뭐가 문제라는 듯 말했다. "컵홀더가 없으면 더 좋죠." 커피에 늘 세트처럼 나가는 일회용 빨대를 두고서도 "빨대는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손님들도 생겼고, "후딱 마시고 갈 거니까 컵에다가 담아줘요"라고 말하는 손님들도 많아졌다.
뿐만 아니었다. 책을 사는 손님들에게 담아주는 쇼핑백이 떨어졌다. 새로 주문하려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에도 쇼핑백이 한가득 쌓여있는데, 손님들도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조심스럽게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우리 카페&서점에서는 쇼핑백을 재활용해서 사용하려고 합니다. 혹시 집에 안 쓰시는 쇼핑백이 있다면 가져다주세요." 그러자 다음날 내게 100여 장의 쇼핑백이 생겼다. 쇼핑백은 알록달록하고 크기도 가지각색에 브랜드도 다양했다. 치킨, 빵, 햄버거, 옷, 신발 등등. 쇼핑백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었다. 손님들의 추억이 담겨있을 수도 있고, 손님들의 취향이 녹아있을 수도 있는 그 쇼핑백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풍족해졌다.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어느새 우리 카페&서점은 다양한 환경지킴이 활동을 하게 되었다. 텀블러를 용량대로 담아드리는 것부터, 재활용 쇼핑백과 포장지 활용하기, 스텐 빨대 쓰기, 그리고 카페 주변의 마을을 청소하는 일까지. 분명히 고백하건대, 나 혼자라면 생각지도 못했을 일이다. 바빠 죽겠는데, 먹고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환경을 생각할 여력이 어디있단 말인가. 그러나 손님들은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며 '함께하자'라고 말했다. 컵홀더와 빨대를 거부하고, 텀블러를 사용하고, 냅킨 대신 손수건을 들고 다니면서 함께하는 지구가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었다. 이제 나는 더 고민하게 된다. 손님이 건네준 선한 영향력을 나는 이 카페&서점에서 얼마나 전달해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