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이 되자 반짝반짝, 깨끗하다 못해 빳빳하기까지 한 신상 다이어리에 이것저것 버킷리스트를 적기 시작했다. 다이어리는 한 해, 그러니까 총 12개월이나 사용할 수 있지만 이상하게 매년 1월 그 어딘가에서 멈춰있다. 올해는 꼭 일 년 동안 다 써보리라 다짐하지만, 다이어리를 들춰보니 또 설이 되기 전, 그러니까 1월 중순에 멈춰있다. 휴.
어쨌든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영어 원서 읽기'다. 혼자서면 어려울 것 같아 이번에도 손님들과 함께하기로 결정한다. 모임의 멤버는 총 일곱 명으로 30대, 40대, 50대, 60대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한다. 게다가 기존에 알고 있던 손님보다는 새로 온 손님들이 많아 설렘이 더 증폭하기 시작한다. 두근, 세근, 네 근!
그렇게 드디어, 첫 모임이 시작됐다! "우리, 한 권의 원서를 끝내기 위해서 자주 볼 사이인데 간단한 자기소개나 해볼까요?" 누구 먼저 시작해야 하나 쭈뻣쭈뻣 어색해서 서로 동공을 굴리기 시작한다. 나는 싱긋 웃으며 "자자, 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돌아갑니다!"라고 외쳐본다. 순서가 정해진 손님들은 그제야 안심한다. 그리고 차분히 다른 사람의 소개를 들으며 자기 자신을 소개할 마음의 준비를 한다. 우연찮게 마지막으로 자기소개를 할 사람은 60대 손님이셨다. "다들 나이를 말씀 안 하시네요. 옆에 분이 저랑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데, 맞나요? 아아. 제가 제일 나이가 많군요. 저는 올해 딱 60입니다. 사실 저는 이번에 은퇴를 했어요. 은퇴하기 전에도 이런 모임은 제가 사내에서 만들어서 추진하기도 했고요. 은퇴하고 나오니 이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야 해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에 손님들이 은퇴에 대한 축하, 그리고 새로 이 모임에 함께하게 된 것에 대한 축하의 박수를 아끼지 않고 보낸다.
자기소개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모임이 시작된다. 나는 모임의 진행자로서, 어떤 방식으로 모임을 진행할지 간단히 소개한다. 그리고 처음 모임 이후, 앞으로의 진행방식 등은 자유롭게 의견을 내어 결정하자고 이야기해본다. 각자가 원서를 읽은 방법, 읽은 범위까지의 간단한 소감, 인상 깊었던 구절, 하고 싶은 질문 등 다채로운 이야기가 오간다. 그런데, 이상하게 60대 손님의 얼굴이 점점 굳어진다. "우리 다 아는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근본적인 통찰의 이야기를 해봅시다" 그러더니 이런저런 책의 제목, 어려운 어휘들이 테이블 위를 돌아다닌다. 다른 손님들은 당황함, 그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표정을 짓는다. 나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다른 분에게 발언권의 기회를 드리며 분위기 전환을 꾀해본다. 우여곡절 끝에 모임을 마쳤지만, 끝내 60대 손님은 말투와 행동을 통해 '불만족'을 표했다. 아, 마음이 불편하다.
연령대도 다르고 각자 이해하는 정도도 다를 뿐만 아니라 각자의 성격, 취향 그 모든 게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한 모임에서 '하나'로 이끌어낼지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모두가 '완전'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만족하며 모임에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그 마음 하나로 치열하게 고민한다. 그때 짤랑 소리를 내며 한 손님이 들어온다. "어? 또 오셨네요?" 오늘 원서 읽기 모임에 참여한 50대 손님이다. "오늘, 저는 사실 진행자가 있는 모임은 처음이라 낯설기도 했어요. 하지만 진행도 그렇고 중간중간 이야기해주신 부분도 다 너무 좋았어요. 새롭고 낯선 부분을 감안할 만큼 좋았어요." 그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고 말하며, "이제 점심시간이 끝나가서 가야겠어요. 오늘 반차 쓰고 나온 거라. 다음 주에 또 만나요"라고 서둘러 가신다.
나는 오늘의 모임을 다시금 되새겨본다. 60대 손님에게서 느꼈던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불편함, 그리고 이질감. 그건 무엇이었을까? 자기소개에서부터 시작된 '나이' 이야기 때문이었을까. 모든 손님들의 나이를 파악하고, 자기 안에서 나이별로 줄을 세우는 것, 그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무의식적으로 해왔던 것일 테다. 35년이 넘는 직장생활을 통해 몸에 베인 '태도' 때문이었을까. 상급자로서 모든 것을 리더하고 지도하는 그런 것 말이다. 나이든 경력이든 내게는 모두 '권위'로 와닿는다. 나이라는 권위를 세우고, 경력이라는 권위를 내세우는 것으로만 보인다. 그런데 그 이상으로 나를 붙잡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런 60대 손님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그리고 함께한 나를 그네보다 '어린' 손님들의 시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20~30대에 우리는 순종하는 법을 배운다. 사회라는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그리고 망망대해 같은 세계에서 우리는 통나무 하나만 쥐어주고 던져졌다. 그러니 이미 그 세계에 던져져 통나무를 엮어 조각배를 만들고, 큰 배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 경청을 넘어 순종하고, 순종을 넘어 복종하기도 한다. 그리고 40~50대가 되면 이제는 리드하는 법을 배운다. 아니, 리드하라고 던져진다. 내 뒤를 돌아보면 있는 저 많은 통나무, 조각배들을 이끌라고 지시받는다. 순종만 하다가 이끄는 자가 되려니 실수도 많고 욕도 많이 먹는다. 되려 통나무 때보다 더 사무치는 외로움도 느낀다. 하지만 이내 이겨내었고, 60대가 되자 이제 육지에 도착했다고 배에서 내리란다. 육지라는 새로운 세계에 던져진다. 몸도, 마음도 늙은 채로. 그러나 이미 육지의 시계는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고, 거기에 맞춰 발버둥 치기도 힘든데 사회는 이렇게 요구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 나이도, 경력도, 갖고 있는 자질구레한 모든 권위도, 그리고 삶의 방식마저도. 지금까지 쌓아온 그 모든 것을 '라떼시절 멘트'라는 한마디로 부정적인 것 취급당한다.
오늘 60대 손님은 은퇴 후 첫 모임의 장소에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무엇을 느꼈을까? 은퇴 후 첫 모임이라 설렘을 안고 참여했는데 생각과 달라서 실망했을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진행자가 멋대로 끊어서 짜증이 났을까? 그도 아니면 다른 모임을 찾아보자고 결심했을까? 그런데 다른 모임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껴서 은퇴 후 세상은, 정말 내 맘과 같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그래서 이내 외롭고도 씁쓸한 기분이 들었을까?
그네 마음은 그네가 잘 알겠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우리는 같은 장소에서, 함께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그 공간을 오롯이 '함께'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