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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Feb 14. 2022

33. 자영업자에게 남편의 퇴사의 의미

"나, 사실은 그만두고 싶어"


주말부부 8년 차, 드디어 남편 입에서 말이 나왔다. '언제 이 말이 나올까', '언제 이 말을 할까' 조마조마하며 기다리길 8년 차. 그 긴 시간을 혹독하게 견디고 견디다 마침내 속내를 고백하는 남편의 마음을 알기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은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한다. 매일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밤 열두 시에 퇴근하는 게 일상이다. 아니, 퇴근이 '퇴근'이 아니다. 아파트 한 채를 사택으로 제공하고 있어 소장, 차장, 과장님들과 다 함께 산다. 방의 개수가 적어 직장동료와 방을 나눠 쓰기도 하고, 퇴근 후 맥주 한 잔 하자는 차장 손에 이끌려가 밤새 술을 마시기도 한다. 토요일 또는 일요일, 한 주에 하루 혹은 이틀 쉴 수 있는 그날만을 간절히 기다리며 평일을 버텨낸다. 그렇게 겨우내 버텨내다 집에 오는 날, 오후 9시경 집에 도착해서 늦은 저녁을 먹고, 다음날 아이랑 놀다가 오후에 다시 일터로 떠난다. "오롯한 하루도 아닌, 반나절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건 너무 슬프다"라는 말을 꺼낸 뒤로는 하루를 오롯이 지낸 다음, 다음날 새벽 4시에 일어나 일터로 바로 출근한다. 그렇게 반복된 시간은, 꼬박 7년 2개월.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냈을까, 그에게 주어진 한 달, 30일 중 정말 살아있던 하루는 며칠이나 될까. 그가 보낸 7년 2개월의 청춘과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남편의 퇴사가 결정되고 정리할 것이 몇 가지 있었다. 바로 월세, 전기세 등등 각종 공과금의 납부이다. 내가 벌인일이니 내가 끝까지 책임져보겠다는 말과는 달리 남편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었다. "월세 내는 날인데 돈이 조금 모자라서... 20만 원 정도만 빌려주면 안 될까?" 내 질문에 남편은 매달 30만 원을 '투자금'이라는 명목으로 통장에 꽂아주었다. 남편에게는 수익성이 1% 도 없는 하이리스크 앤 하이리크스리턴 종목일지라도. 여름, 겨울철 전기세가 20만 원이 훌쩍 넘게 나오자, 남편은 다음날 본인 앞으로 전기세 자동납부를 신청했다. 고정적으로 나가는 인터넷비 3만 3천 원은 통신사 가족 묶음을 하면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내 말에 남편은 예상치 못하게 인터넷비까지 떠넘겨받았다. 그렇게 나는 남편의 시간을 희생해서 번 돈으로 이 공간을 유지해왔다. 일을 하는 내 모습이 진심으로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는 남편의 말. 어쩌면 하루라도 빨리 폐업해야 맞았을지도 모르는 이 공간을, 오로지 나만의 이기적인 행복을 위해 끌고 왔을지도 모른다. 


남편의 퇴사 이후 월세, 관리비, 전기세 등등 모두 내 앞으로 돌려둔다. 전기세는 자동납부 기일을 지키지 못해 푼돈으로 여러 차례 나눠서 빠져나간다. 하루는 21,900원, 다음날은 52,000원....... 며칠에 걸쳐 들어오는 영업수익금으로 한 달치 전기세를 낸다. 원두가 떨어져서 주문하려고 보니 10만 원이 넘는 목돈이 든다. 며칠에 걸쳐 들어오는 카드매출을 차곡차곡 다른 통장에 모은다(자동납부에 빠져나가지 않도록) 그리고 원두가 떨어지기 직전에 가까스로 원두를 새로 주문한다. 이렇게 하루살이처럼, 그 다음날 카드매출 입금 알람을 간절히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지내본다. 어느 날은 입금액이 터무니없이 작아 심장이 쪼그라들 때도 있고, 어느 날은 한꺼번에 매출이 입금돼서 숨통을 틔운다. 


어느 날 진심으로 남편에게 물었다. "내가 이렇게 일하는 것보다, 다시 직장을 구해서 일하는 게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남편은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다 말한다. "왜 지금 하는 일은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해? 내가 볼 때 너도 나와 같은 무게로 일했다고 생각해. 네 일도 하면서, 생활비도 벌고, 그리고 아이까지 보고 우리 가족의 일상을 지켜준 거잖아. 우리 둘 다 같이 열심히 일한 거고, 일해오고 있던 거야." 그리고는 "폐업하고 싶다면 그래도 되지만, 지금 너는 지키고 싶은 거잖아. 그럼 하고 싶은 걸해. 아직 우리에겐 퇴직금이 있잖아?" 그렇게 쉽게 나를 위로해버리는 남편이, 장난스레 말해버리는 남편이, 한없이 고마우면서, 그 이상으로 미안하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손쉽게 기대 버렸던 건 아닐까. 가족이라는 이름 하나로, 그에게 많은 부담을 준건 아니었을까. 


여전히 오늘도 하루살이처럼 살아간다. 어쩌면 미래를 고민하지 않고 대책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아니, 미래에 대한 고민할 여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진심으로 우리의 하루를 열심히 그리고 또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기에 주어진 것에 감사할 뿐이다. 적금은 못 들어도 장 볼 생활비는 조금이나마 벌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일을 하며 아이를 돌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제는 남편과 함께 하루의 지는 해를 함께 바라볼 수 있음이 감사하다. 주어진 하루, 주어진 먹을 것, 주어진 행복, 주어진 이 순간순간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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