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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Feb 19. 2022

34. 사람에게 상처받아도, 나는 사람을 사랑할 거야上

자영업 4년 차, 이제 자영업자 커뮤니티에서 정회원이 되었다. 창업을 꿈꾸고 있는 사람에게 팁을 주기도 하고, 종합소득세나 부가가치세 신고기간이 오면 셀프 신고법을 공유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커뮤니티에서 일상을 나누기도 한다. "오늘따라 손님이 너무 없는데, 밖에 무슨 일 있나요?"라고 누군가 물으면, 자영업을 하는 구속된 공간을 벗어난 밖의 세상을 서로 공유하기도 하고, "손님이 갑자기 우르르 몰려왔어요! 기 나눠드릴게요!'라고 말하며 큰 금액이 찍힌 영수증 사진을 올리기도 한다. 댓글로 "우와! 기 받아 갑니다" 속속 달린다. 이런 게 커뮤니티의 재미랄까! 같은 업에서, 같은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으쌰 으쌰 하는 그런 모종의 연대 말이다.


그런데 커뮤니티에서 생각보다 많이 볼 수 있는 주제가 있는데 그건 바로, '인간 환멸'에 대한 내용이다. 자영업을 하며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만나다 보니 인간 자체에 진절머리가 난다는 건데. 들어보면 과연 그럼직하다. 진상 손님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알바생과의 불화도 적잖다. 일하는 동안 커피 한 잔씩 타마셔도 된다고 했는데, 하루에 10잔을 마시고 퇴근할 땐 테이크아웃까지 해가는 알바생이라던가, 출퇴근길 고생하는 알바생을 생각해 교통비 5만 원을 선의로 지급하다 코로나로 경영여건이 어려워져 그 달에 입금을 못해주자 고용노동부에 신고한다고 하는 알바생이라던가 등등. 최근에는 사기꾼까지 기승을 부린다. 카페 사장님들에게는 나름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사기꾼 할아버지가'가 있다(정말 전국구로 유명하다) 옆에 사무실에 들어오게 됐는데, 여기 카페에도 떡을 돌리려고 떡을 주문해놨다. 그런데 현금이 없어서 그러는데 빌려달라 등등의 현란한 말을 하는 할아버지다.


처음 커뮤니티에서 이 글을 읽었을 땐 '이런 사기를 왜 당하지?'라고 생각했다가, 지난날의 나를 떠올린다. 서울로의 출장길에서 지하철을 타려는데 한 할아버지가 나를 붙잡았다. "지하철을 타야 하는데, 교통카드에 돈이 뚝 떨어졌더라고" 그렇게 말하며 나를 끌고 게이트로 간다. 그리고 카드를 띡 하고 올려 보이며 열리지 않는 게이트를 보라는 듯이 제스처를 취한다. "딱, 집에 갈 교통비만 빌려줄 수 있나요? 종이에 계좌번호랑 남겨주면 바로 갚을게요" 그때의 난 '교통비 정도라면'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 할아버지에게 무려 2만 원이 넘는 돈을 주었다. 교통비와 식비를 얹어서. (아이고) 여하튼 그 '사기꾼 할아버지'는 정말 전국의 카페를 돌아다니며 비슷한 말로 사기를 쳤고, 생각보다, 상상 이상의 카페가 그 표적이 되어 돈을 뜯겼고, 커뮤니티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결론은 이런저런 일들을 겪은 자영업자들은 자연스럽게 '인간 환멸' 길로 가게 된다는 건데, 이게 이제 굳혀진 속설이 됐다. 나는 '설마 그러겠어?'라는 생각, '나는 다르겠지'라는 생각의 길로 들어섰다가, 마침내 오늘 결말을 맞이한다. 맥주를 뜯어 입으로 콸콸 쏟아 넣으며 생각한다. '사람한테 환멸이 느껴진다'


친해진 단골손님 몇몇이 이제 커피를 주문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카페에 들러 물과 음료, 과자를 먹다가 돌아간다(몇 시간이고 나를 대화의 늪에 가둬둔 채) 우리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책에 대해서 이것저것 묻고, 선물용 책으로 추천받아놓고 인터넷으로 산다. 우리 가게 밀크티가 맛있다면서 어떻게 만드는지 구체적인 레시피를 요구하고, 영업비밀이라고 말하면 '우리 사이에 그것도 말 못 해주냐'는 식으로 대꾸한다. 아이들과 함께 들러 판매용 책을 있는 힘껏, 열심히 본다. 신중하게 책을 고르고, 몇 시간이고 주의 깊게 고르는가 싶더니 나에게 다가와 '이 책 다 읽었어요!'라고 자랑한다. 판매 중인 음료나 책을 도매가에 달라고 한다(나는 단골이니까) 등등등등. 등등등등. 등등등등.


뭐랄까, 그동안 '그 정도야'라고 생각했던 모든 에피소드들이 내 머리에 한 번에 쏟아져내린다. 나는 잘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까지 단순히 참고 견뎌온 것에 불과했구나 깨닫게 된다. 사소하게 여겼던 순간순간의 아픔이 지금은 절망처럼 다가온다. 손님에게 진심을 다해 친절을 다했다. 그래야지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손님들과 만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마음의 정을 더 나누어주었다. 그래야지 하루를 먹고살 수 있으니까. 손님들이 들어오면 "오늘도 아메리카노에 시럽 한 펌프, 물은 2/3 맞죠?"라고 말할 수 있는, 사소한 취향까지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내 곁을 내주었다. 그래야지 외롭지 않으니까, 그래야지 하루를 버텨나갈 힘이 되니까, 그래야지 행복하니까. 그래야지 그게 '나'니까.


그런데 오늘은 모르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적정 관계를 유지하며, 주고받는 기브엔 테이크의 자세를 고수하고, 계산적으로 서로의 이익을 따진  정도, 마음도 주지 않는 관계가 옳았던 걸까?



사람에게 상처받아도, 나는 사람을 사랑할 거야下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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