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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Feb 19. 2022

35. 사람에게 상처받아도, 나는 사람을 사랑할 거야下

30년 차 직장인 손님과 '직장생활 잘하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적'이 없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직장동료들과 적정 관계를 유지하는 것, 기대하지 않는 것 등등의 꿀팁들이 대거 등장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어떻게 '적'이 없을 수 있을까? 나와 성격도, 일하는 스타일도 다를 수 있는데? 방법은 간단했다. 모든 인간관계에 적정 거리만 유지하면 된다. 나 스스로도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내가 싫어할 것 같은 기미가 보이는 사람에게는 잘해주려 노력하고, 내가 좋아할 것 같은 사람에게는 거리를 두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이게 중요하다. 누군가 다를 도와줄 것이라는 기대, 그 사람은 이 정도 일을 해낼 것이라는 기대, 내가 이렇게 하면 저 사람은 저렇게 하겠지라는 반응에 대한 기대. 그 모든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 기대와 다른 현실에 실망할 필요도 없어지는 거다. 그게 30년 차 직장인 손님이 30년의 세월 동안 배운 사실이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퇴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절차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상하게 '적당히'가 안된다. 수많은 책을 통해 관용, 중용, 중립 등의 표현을 배워도 내 몸과 마음은 이미 이성을 벗어나서 행동한다. 시간에 비례해서, 아니 시간을 초월 비례해서 정과 마음을 준다. 표정관리는 더더욱 어려워서 좋으면 좋아했고, 싫으면 싫어했다. 아주 감정에 정직한 사람이었다. 이런 나는 30년 차 직장인 손님의 눈에는 '감정조절이 어리숙한 사회초년생'으로 비칠 뿐이다.


*


'딸랑' 


나는 들어오는 두 명의 손님을 보고 돌고래 소리를 지른다. "뭐야!! 이 시간에 웬일이에요!" 나의 4살짜리 아이는 사람이 마냥 좋아서 사람만 보면 소리를 '꺄!' 지르곤 하는데, 딱 내가 그 4살짜리 아이와 같았다. 들어오는 손님은 나의 이런 환호성이 처음이 아닌지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둘 다 이 근처 있다가 놀러 왔지!" 나는 자연스럽게 따뜻한 카페라떼에서 샷 2개 추가, 따뜻한 바닐라라떼에 바닐라 시럽과 파우더를 추가해서 나간다. 오늘 방문한 두 명의 손님은 내가 운영하고 있는 '책맥(책과 맥주가 함께하는) 독서모임'의 멤버들이다. 책맥 모임을 시작한 지는 불과 5개월 남짓한 시간밖에 안되지만, 나는 벌써 이들과 친구가 되었다. 책맥 모임 멤버들은 모두 40대 중반에서 50대 후반 사이에 있다. 하지만 세대를 넘어서 나는 진심으로 이들을 '친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각자 커피 한 잔씩을 홀짝홀짝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근황 토크부터 시작해서, 자녀 교육문제, 최근에 읽었던 책, 요새 관심사, 계획되어있는 가족 휴가 등등. 나는 그녀들의 나이와 직업을 넘어서 가족의 구성원의 수, 나이와 취미까지 알게 되었다. 나 또한 요즈음 말을 안 듣는 4살짜리 아들의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여놓는다. 그렇게 대화의 꽃을 피우다가 해가 카페 안으로 쨍하게 들어오는 시간, 그때가 오후 4시쯔음이다. 우리는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에 만나서 또 이야기해요"라고 말하며 다음을 기약한다. 그녀들이 떠나고 난 카페에서 조금은 허전함을 느끼지만, 마음은 더없이 풍요롭고 또 따스해졌음을 느낀다. 남아있는 카페의 오픈 시간을 즐겁게 기다릴 수 있는 에너지를 느낀다. 설거지도 청소도 모두 흥얼거리며 할 수 있는 즐거움을 느낀다. 카페에 아직까지 머물고 있는 그녀들의 온기를 느낀다. 삶의 행복을 느낀다.


이내 깨닫게 된다. '아, 나 오전에만 해도 사람한테 환멸 느껴진다고 했던 사람인데?' 스스로의 모순에 나는 그냥 웃어버리고 만다. 30년 차 직장인 손님이 말씀해준 것처럼 사는 것이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자 표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제로도 맞을 테다. 왜냐면 난 중간에 그 세계를 뛰쳐나온 중도퇴사자니까. 하지만 말이다. 아무리 사회생활이 험난해진다고 해도, 나는 사람을 사랑했을 때 오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업무성과를 통해 드러나지 않아도, 마음을 통해 드러나는 결과가 있다고 믿는다. 타인에 대한 기대감 없이 나 혼자 모든 것을 감내하는 것이 아닌, 같이 무언가를 했을 때 오는 풍요로움이 있다고 믿는다. 삶을 살아가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드는 일이 삶을 더 오랜 시간 지탱해줄 수 있는 힘이라고 믿는다. 직장생활에서든, 가정에서든, 나만의 세계에서든, 그 어디에서든. 나는 아무리 상처받는다고 해도 나는 또다시 인간에게 정을 주고 마음을 주고, 사랑을 줄 것이다. 인간관계로 상처받고, 좌절하고, 절망하게 될지라도, 되려 그 순간을 이겨낼 힘을 기른다고 생각하련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회복하고, 사랑을 나누며 행복을 찾으련다. 그래, 나는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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