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땐, 인사를 잘하는 게 하나의 미덕이었다. 계단에서 눈이 마주친 사람도, 엘리베이터에서 옷깃이 스친 사람도, 반대편 횡단보도에서 건너오는 사람도 모두 이웃이었다. 그렇기에 늘 우리네 이웃에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세월이 흘러서 우리는 이제 인사는 예의가 아니라고 가르친다. 계단에서 눈이 마주친 사람은, 엘리베이터에서 옷깃이 스친 사람은, 반대편 횡단보도에서 건너오는 사람은 모두 낯선 타인일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늘 투명인간이 될 뿐이다.
지인과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 한 아이가 오른쪽 손을 번쩍 들고 건넌다. 그 아이의 천진난만함에 나도 모르게 웃었나 보다. 아이는 그 웃음을 인사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넨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횡단보도 위에서의 인사. 초록불의 카운트다운이 빠르게 시작되는 와중에 주고받는 인사. 그 인사가 오랜만이라 참 반갑다. 제대로 된 답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신호가 바뀌어버린다. 빨간불이 되어 저편으로 건너가버린 아이의 뒷모습을 조금 시간을 들여 바라본다. 그런 나를 두고 건네는 지인의 말은 왜 이리 낯설게 다가올까. "'이상한' 얘네. 왜 모르는 사람한테 인사를 하지"
얼마 전 인근에 있는 중학교에서 북토크쇼에 초청받았다. 어릴 때는 정말이지 학교 가는 게 제일 싫었는데. '학교 분위기가 이렇게나 고즈넉하고 또 정겨웠나' 옛 추억을 회상하며 복도를 거니는데, 이내 종이 울리고 눈앞에 있는 열개의 반에서 아이들이 와르르르 쏟아져 나온다. 어머나. 당황하여 어리둥절하고 있는 내게 학생들이 다가와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넨다. 나는 "네,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며 어깨를 최대한 동글게 말았다. 수업시간에 잠재웠던 열기를 쉬는 시간에 방출하는 에너지가 너무도 뜨거웠다. 아, 이제 기억난다. 쉬는 시간에서의 복도를 효율적으로 건너는 방법. 두 눈을 번쩍 뜬다. 왁자지껄 지나가는 아이들 사이의 틈을 발견한다. 그리고 재빠르게 그 틈을 파고든다. 그렇게 몇 번 요리조리 순간이동을 하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
찰나의 순간에 숨을 돌리고자 도서관 문 앞에 서있는다. 갑자기 배가 간지럽다. 간질간질. 누가 이렇게 내 배를 간지럽히나. 1분이면 걸어갈 그 복도에서 나는 수십 명의 학생들과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았다. 고작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하는 대화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주고받았다. '학교에 침입한 저 외부인은 누구지'라는 호기심이 귀여웠고, 나와 옷깃을 스친 사람에게 건네는 눈웃음은 청량했다. 도서관 문을 활짝 열었다. 나를 바라보는 학생들 앞에서 나는 뱃속에서 크게 숨을 끌어올린다.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