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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Oct 26. 2022

7. 이 나이 먹어도 왜 아직까지 인간관계가 힘든 거죠

이 나이 먹어도 왜 아직까지 인간관계가 힘든 걸까. 아직 여물기에는 새파랗기 때문일까? 비교적 이른 나이, 스물넷에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힘들었지만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할 만큼 열정적으로 보냈다. 지금은 동네서점 겸 카페를 운영하며 책방지기로 불린 지 곧 5년 차가 된다. 매달 20개가 넘는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2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난다. 여전히 종교를 권유하는 사람, 물건을 영업하는 사람도 만나게 된다. 그만큼 유들유들, 자연스러운 대처법도 익히게 되었다. 그래! 이쯤 되면 인간관계가 조금은 쉬워져야 하는 게 아닌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경험을 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었지 않은가. 어제보다는 더 나은 내가 되어있음을 스스로도 느끼는데, 지금쯤은 인간관계가 한결 편해져야 하는 게 아닌가.


4년 차 독서모임 멤버 A씨는 최근의 일로 마음이 뒤숭숭하다. 독서모임에서 만난 다른 멤버들이 A씨만 빼고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각자가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포스팅을 보고 혼자만 소외되어있음을 느낀다. 그런데 이런 일을 가지고 비판하기에는 뭔가 내가 쩨쩨해질 것 같다. 그럴듯한 명분도 없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책방지기는 마음이 심란하다. 인간관계에서 그 '코드'라는 게 무엇이길래, 누군가는 소속시키고 누군가는 배제할 수 있는 걸까. 그때 A씨가 이런 말을 건넨다. "이곳 독서모임 멤버들도 최근에 안 나오고 있죠? 다들 그쪽으로 간 거 알아요?" 아ㅡ


그래 느끼고는 있었다. 하지만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과, 타인이 말로 짚어주는 것은 엄연히 그 무게감이 다르다. 3년간 무료로 운영하던 독서모임을 이번에 유료로 전환하면서 대거 이탈자가 발생했다. 책 한 권 더 팔고 싶어서, 커피 한 잔 더 팔고 싶어서 시작한 독서모임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다. 카드 뉴스를 만들고, 멤버를 구하고, 단톡방을 구성하고, 각자의 일정을 조율하고, 책을 읽고, 질문거리를 만들고,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다음 모임을 구성하고. 독서모임이 와해되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된다는 건 분명 누군가의 애정이 들어갔다는 증거다. 월세도 남편에게 빌어붙고있었는데, 더 이상 무료로 진행할 수 없어서 결정한 '유료'모임이다. 이탈자가 생기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여파가 이토록이나 컸을지는 몰랐을 뿐. 그 뒤로 누군가가 만든 무료 독서모임이 이토록 파급력이 있는지 몰랐을 뿐. 갑자기 속상함이 몰려온다.  '다른 대형 서점가서는 책 한 권 사면서 '책 샀으니까 독서모임 해줘' 이런 말 하시나요. 다른 카페에서는 '차 한잔 여기서 마실 테니까, 독서모임 진행 좀 해주세요'라는 부탁하시나요. 작은 동네 서점이라서, 작은 카페라서 너무 편하게 부탁하는 거 아닌가요.' 한참을 울분을 토해봐도 갈무리되지 않는 이 마음이 버겁기만 하다.


그로부터 몇 번이나 A씨를 만났다. 유료 모임으로 전환되자마자 탈퇴한 멤버들을 우연히 마트에서 만나기도 했고, 이곳에서 만난 인연끼리 나가서 새로운 독서모임을 만든 멤버들도 마주쳤다. 그때마다 내게 가장 먼저 다가온 감정은 바로 '반가움'이었다. 타인에 대한 미움과 증오, 미련보다는 반가움이었다. 속상하고 미운 감정이 한 켠에 남아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그 사람의 얼굴만 봐도, 모난 감정이 모두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닌가. 도대체 왜 그런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온 답은 이거였다. 멤버들 한 명, 한 명 모두가 분명 좋은 사람이었기에 미운 감정보다는 애정이 먼저 나갈 수밖에 없었구나. 진정한 문제는 그들과 나의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달렸구나. 독서모임이 유료로 전환된 만큼 무료 독서모임과는 다른 차별점을 만들고, 멤버들이 이탈한 만큼 더 되돌아올 수 있는 매력적인 포인트를 만들어나가 보자. 그게 내게 주어진 숙제이고, 나는 그들이 내어준 숙제로 더 단단해지고 더 여물 것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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