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책과 함께하는 티키타카
최근 멤버들이 하나 둘 시래기 같은 상태로 독서모임에 온다. 왜 이렇게 피곤해 보이는지 물어보면 하나같이 '공부'를 한다고 한다. 한 멤버는 3D 애니메이션을 배우기 위하여 정기적으로 서울로 가고 있다. 다른 한 명은 코딩을 배우기 위해 퇴근 후 공부를 시작했다. 다른 한 사람은 "근로소득의 시대는 끝났어요"라고 말하며 주식과 부동산 투자에 대한 스터디 모임을 한다고 한다. 그들의 결론은 이거다. '평생직장의 시대는 끝났다. 평생 공부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멤버들의 열정적인 모습이 멋져 보이지만, 실은 그보다는 마음이 더 쓰인다. 일만 해도 분명 만만치 않을 텐데, 거기에 이어 새로운 직업에 대한 탐구와 공부, 독서, 자기 계발에 운동까지! 그렇게까지 해야 할 정도로 우리의 미래는 불안과 불확실로 점칠되어있는것일까.
조급함과 두려움은 전이되기 쉽다. 나는 혼자서 코딩 언어 파이썬을 배우고, 재테크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두려움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은 더더욱 커져만 간다. 파이썬을 배우고 나면 새로운 코딩 언어가 등장하지 않을까? 웹툰과 웹소설 쓰는 법을 배우고 나면 새로운 문화의 장르가 만들어지지는 않을까? 주식과 부동산은 가히 가변적인데, 이론과 기법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던가? 내가 배우는 동안 새롭게 등장할 문화와 기술, 내가 그것들을 다 따라갈 수 있을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는 변화하는 세계에서의 근원적 생존 방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단지 찰나의 기술만을 알려고 하는 건 아니었을까.
신영복 선생님은 <담론>이라는 책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공부는 살아가는 것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서 공부해야 합니다. 세계는 내가 살아가는 터전이고 나 또한 세계 속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란 세계와 나 자신에 대한 공부입니다. 자연, 사회, 역사를 알아야 하고 나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공부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키우는 것입니다. 세계 인식과 자기 성찰이 공부입니다"
독서모임 멤버로부터 질문을 하나 받았다. "책방지기님은 한 달에 스무 개가 넘는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잖아요. 모임마다 참여자의 나이, 직업, 성별이 모두 다를 텐데, 그들과 어울리는데 부담감이나 어려움이 없나요?" 음.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실제로 독서모임 참여자의 연령대, 직업, 성별은 모두 다양하다. 개개인마다 성격도 다르다. 책을 읽는 방식도, 이야기하는 스타일도, 대화를 할 때 나오는 제스처마저 다르다. 하지만 다르기에 독서모임이 의미가 있고 또 재밌는 거다. 모두가 통통 튀는 다채로움을 하나로 버무려주는 역할도 분명 필요하다. 그게 바로 '책'의 존재다. 공통의 대화 소재가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공통점은 필요치 않다. 책을 각자의 방식으로 읽고,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타인의 생각을 들어보며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독서모임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독서모임은 내겐 삶에 대한 이해요, 공부다. 그리고 그 과정 또한 즐거움이다.
그래, 이제야 알겠다. 공부라는 게 새로울 게 있나 싶다. 공부는 살아가는 것 그 자체인 것을. 책을 비롯한 다양한 매개점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서로의 배경과 차이를 인정하고, 이내 그들과 어울려 더불어 사는 방법을 배우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 함께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것. 그것이 모두 공부일 것이다. 그것도 평생의 공부 말이다. 평생직장이 없는 불안정함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분명 인간일 것이다. 인간만의 특성, 본능, 사회의 모습은 수많은 고전이 들려주는 것처럼 변화하지 않을 것이기에. 세계와 나 자신에 대한 공부를 나는 지금처럼 해나가야겠다. 살아가며 배워야겠다. 살아가기 위해 또 공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