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혼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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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여유롭게 책 한 권 읽으면 행복하시겠어요" 손님들의 말에 나는 늘 똑같은 대답을 한다. "네, 정말요" 하지만, 내겐 때론 피노키오가 되고 싶은 순간이 있다. 거짓말을 할 때마다 길어지는 코로 내 진심이 드러나보였으면 좋겠다. 사실 그렇게까지 행복한 건 아닌 것 같다고. 조금 외로운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고.
여유롭다는 말은 한가하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서점도 하나의 영업장과 다름없어서 한가한 시간이란, 그만큼 입에 풀칠하기 힘들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여유로우면 머리에 생각이 많아진다는 것, 그게 나를 무척 괴롭힌다. '오늘은 왜 손님이 없을까? 날이 추워서 다들 집에 꽁꽁 숨어있나보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지루하지? 내일도 이렇게 지루하면 어떻게 하지?' 커피도 마시고, 군것질도 하고, 책도 읽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봐도 오늘은 왜 이리 시간이 안 가는지. 앞으로 7시간은 더 있어야 하는데!
참을 수 없는 지루함에 꺼내는 휴대폰은 나를 더욱 외롭게 만든다. 단골손님이 우리 서점이 아닌 다른 서점에서 산 책을 읽고 있는 사진을 보면 서운함을 느낀다(괜히 봤나, 엉엉) 친한 손님들끼리 모여서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여행사진을 보며 소외감을 느낀다. 나는 요새 마음의 모순을 느낀다. 손님들이 우리 서점으로 놀러 왔으면 좋겠다는 욕심, 다른 공간에 간다면 질투의 감정을 느낀다. 그러다 막상 그네들이 이곳에 와서 책 한 권, 커피 한 잔을 사 마실 때는 미안한 감정이 든다. 장바구니 물가에 덜덜 떠는 세상에, 한 푼 한 푼 아껴도 모자랄 판에 도서정가제를 실시하는 이런 서점에서 책을 사게 만든 것이 사무치게 미안한 것이다. 나는 이런 간극 때문에 늘 마음이 체한다. 서점도 영업이고 장사라는 사실이, 산다는 것이 왜 이리 서러울까.
사람 간의 관계에서도 분명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특히 영업장에서의 관계는 더 철저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서점을, 이 공간을 더 이상 영업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보다. 내겐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이야기하고, 어울리고, 정을 나누고, 사랑을 만드는 인류애적 공간이었던 것이다. 내 마음은 늘 거리를 두는 법이 없어, 사소한 것에 서운함을 느끼게 하고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 마음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타인을 통해 서운함, 외로움 그리고 질투 어린 감정을 경험한다는 것은, 역으로 내가 사람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모두가 마음의 거리두기를 하는 것보다, 나 같이 마음의 거리두기를 안 하는 사람도 있기에 세상은 조금이나마 따수운게 아닐까! 마음 퍼주는 게 뭐 죄인가, 이것도 분명 인류애적인 한 부분일 테다(히히!)
서점에서 혼자가 될 때마다 이병률 시인의 <혼자가 혼자에게> 속 문장을 떠올린다. "당신이 혼자 있는 시간은 분명 당신을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어떻게 혼자인 당신에게 위기가 없을 수 있으며, 어떻게 그 막막함으로부터 탈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혼자 시간을 쓰고, 혼자 질문을 하고 혼자 그에 대한 답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 닥쳐오는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은 그 외로움 앞에서 의연해지기 위해서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면서 써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목숨처럼 써야 한다."
외로움 속에서 생각은 많아지고, 생각은 또 생각을 낳고, 이내 치열한 고민과 고뇌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내 외로움 속에서 새로운 지혜를 얻는다. 사랑을 깨닫는다. 외로움이 주는 시련 속에서 단단해진다. 음, 이 정도면 외로움을 느껴보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구나.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다는 '캔디'가 떠오른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 들을, 푸른 하늘 바라보며 노래하자. 나 혼자 있으면 어쩐지 쓸쓸해지지만 그럴 땐 얘기를 나누자 거울 속의 나하고♬
노래 '캔디'속 가사가 이리 철학적이었나? 어딨지 내 거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