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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Mar 27. 2023

20. 인생의 대환장 파티를 경험해 본 적이 있나요?上

내가 뚜벅뚜벅 걸어온 길들을 뒤 돌아봤을 때, 생각보다 길이 질척거리는 순간도 많았고, 걷고 있는 '나'의 엉뚱함으로 여정이 다사다난하기도 했다. 그런데 누구를 탓하랴. 땅을 지탱하고 서있는 '나'의 삶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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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왜 이렇게 대환장 파티일까" 이번 한 주 내내 곱씹었던 말이다. 격주에 한 번씩 KBS진주 방송국에 가서 10여 분간 책 소개를 하고 온다. 이때는 유치원에서 퇴근한 아들을 데리고 가곤 한다. 아들을 딱히 맡길 곳이 없기도 했고, 휴대폰만 쥐어주면 얌전히 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 아들은 컨디션이 영 별로였다. 열이 조금씩 오르고, 켈록켈록 마른 잔기침을 뱉었다. 방송을 위해 방음벽이 쳐진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갈 때면 아들을 떼어두어야 했는데, 아들은 내게서 떨어지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방송 시간은 다가오고, 아들에게 나의 논리적인 설득은 먹히지 않는다. 결국 아들의 손가락을 힘주어 하나하나 떨쳐놓고, 내게 안겨오는 그 두 팔을 힘으로 벌려 떨쳐놓는다. 10여분의 시간은 어떻게든 흘러갔다. 방음벽을 뚫고 쨍하게 울려오는 아들의 울음소리, 안절부절못하는 방송국 PD와 작가, 불안한 눈빛으로 방송을 이어나가는 아나운서, 그 사이에서 입술을 깨물며 떨어지려는 눈물을 어떻게든 우악스럽게 붙잡는 내가 있다. 


방송국을 나오자마자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아이를 둘러업고 나온다. 서둘러 집으로 가려고 운전대를 붙잡는데 갑자기 세상 한가운데 던져진 듯 시야가 파괴된다. 그리고 이어진 '쿵!' 소리에 언어마저 갈 길을 잃었다. 주차장에서, 주차된 차를 박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박아도 하필, 제네시스라니!'라고 절망하는 내가 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차주에 전화를 하고, 보험 접수를 하고, 집으로 건너온다. 방송국에서 집까지 20분의 시간 동안 차 안은 고요하다. 칭얼거리는 아들마저 조용히 잠이 든다. 빨간불의 정지신호에 맞춰 아들의 이마를 쓰다듬어본다. 곧 초록불로 바뀔 신호가 주는 조급함 속에서 아들의 이마를 어루어 만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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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되자마자 소아과를 갔다. 8시 30분부터 대기하고, 10시가 넘어서야 진료를 볼 수 있었는데 진료는 5분 만에 끝이 났다. '폐렴'이라는 진단을 얻고서. 3시간 정도 더 대기를 하고서야 입원할 수 있었는데, 입원 수속 과정 중의 검진과 혈관 주사는 내 마음속 죄책감을 더했다. 다행히 아들과의 병원 생활은 즐거웠다. 때마다 맞춰 나오는 병원 밥이 내게는 기쁨이었고, 아프다는 핑계로 마음껏 볼 수 있는 TV, 양껏 먹을 수 있는 과자는 아들에게 행복이었다. 이틀정도 지나니 병원 생활도 익숙해져 흐름이 보였다. 일어나서 밥 먹고, 약 먹고, 진료받고, 조금 돌아다니며 놀다가 보면 저녁이 왔다. 저녁 7시 무렵에는 퇴근한 아빠들이 우르르 몰려왔고, 9시 30분 무렵에는 아빠들이 각자의 집으로 귀환했다. 내일의 생계를 위하여. 우리 집의 '아빠'도 그렇게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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