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위에 일을 그만두는 청년이 두 명이나 생겼다. 바로 남편과 남동생이다. 건설현장에 계약직으로 들어간 남편은 계약만료가 2개월 코앞으로 다가왔다. 드러내는 불안감은 생활 속에서 곳곳 표출되고 있다. 미용실을 가는 주기가 길어지기 시작했고, 참다가 마지못해 다녀온 미용실에서는 짧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나온다. 툭하면 먹고 남기길 잘하는 아들, 장난감을 손쉽게 망가뜨리는 아들을 두고 '이게 얼마짜린데'를 중얼거리다가 스스로에게 화들짝 놀란다. 일이 없다는 것, 고정적으로 들어올 수입이 없다는 것은 그의 일상을 세세하게 계산하게 하며 스스로를 궁핍하게 만든다.
나보다 사회생활 대선배이신 남동생은 10년 차 군인이다. 직업 특성상 평택, 진주, 사천, 광주 곳곳으로 이사도 여러 번 다녔더랬다. 매번 바뀌는 업무환경에도 열심히 잘 살아가는가 싶더니, 이번에 정을 훅 떨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퇴근길 1톤 트럭이 뒤에서 받아서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구나 싶었는데, 영 목이 심상치 않다. 몸 걱정보다 제게 주어진 일에 대한 걱정이 더 앞선다. '다음날 당직인데!' 다음날 당직이 불가능할 것 같다고 빠르게 알렸지만, 그 누구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래, 갑작스럽게 당직을 맡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그렇게 생각해 보지만, 아픈 목을 기어코 붙잡고 당직을 설 때 서러웠다. 그렇게 그는 10년 경력을 접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막상 사직서를 내놓고 보니,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진다.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 앞으로 나아가야 할 세상이 두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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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마다 우두커니 부엌에서 사념의 시간을 보내는 남편
10년 차 직장생활을 했지만, 10년 동안 뭘 한 걸까 허한 느낌에 사로잡혀있는 동생
이 세상을 살아가는 두 청년에게, 이 N잡러가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92년생 '애매한 인간'입니다. 말 그대로 가진 능력도, 돈도, 경력도, 성격도 뭐든 애매하기만 한 저입니다. 그래서인가 가진 직업도 딱 부러지게 하나로 말 할 수 없이 애매합니다. 카페를 하고 있는 사장님이기도 하고, 서점을 하고 있는 책방지기이기도 하고, 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이기도 하고, 글을 쓰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고, 동네에서 여러 문화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기획자이기도 하고, 요청하면 강연도 뛰러 나가는 N잡러 인생입니다. 그러나 저는 더 이상 제 삶이 불안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중심에 서있는 '나'를 알기 때문이죠. 저는 그 어느 순간에건 치열하게 살아왔습니다. 꿋꿋하게 하루를 버텼습니다. 무너져내리는 순간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가 책임감 많은 사람임을 압니다. 나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사람임을 압니다. 그러니 내게 어떤 상황이 눈앞에 닥치더라도 이 또한 이겨낼 수 있는 사람임을 압니다. 가진 건 아무것도 없지만, 내 몸만이 가진 자본의 전부이지만, 그 자본만으로 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까지 삶을 그렇게 살아왔거든요. 두 청년은 자기 자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N잡러를 하고 있는 저를 곁에 두고 있습니다. 두려워마세요. 지금 청년에게는 1+1 기회가 있는 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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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고민을 내려놓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그만큼의 무게를 짊어진다. 그 고민은 더 이상 그들만의 고민이 아니라 나의 고민이 된다. 내게 고민을 털어놓는 이들에게 모두 다 원하는 답을 줄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서있는 위치에 서서 함께 고민해 보는 것만으로도, 진지하게 나의 고민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언젠가 답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게 된다.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 같이 고민하면 그 답을 더 빨리 찾게 된다. 고민하다 보면 그 답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가만히 앉아서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하고 기다리는 게 아니라, 답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움직이게 된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둘이서. 그 고민의 무게를 더 나누게 되다면 여럿이서. 그게 사람이란 존재의 의미이고(人이라는 한자가 서로가 기대어 있는 형태지 않은가), 사랑의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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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님이 커피 한 잔을 찬찬히 마시고, 갈 때쯤 돼서 내게 쇼핑백 하나를 내민다. "브런치 독자입니다. 이건 책이에요. 최근 글 잘 읽고 있어요. 글을 읽다가 괜히 내 일 같이 가슴이 아파서. 뭐든 할 수 있으니까, 작가님은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손님이 내민 것은 웹소설 쓰기를 위한 책이었는데, 받아보고 오랜 시간 생각 속을 맴돌았다.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새로운 도전이 새로운 길을 알려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은 나를 설레게 했다. 책 한 권에 마음을, 그리고 희망까지 담아준 그에게 어떻게 감사의 말을 전할 수 있을까. 덕분에 사람을 통해 건네온 사랑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