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매한 인간 Mar 27. 2023

21. 인생의 대환장 파티를 경험해 본 적이 있나요?下

아들의 입원기간 동안 돌볼 수 없는 가게는 굳게 문이 닫혀있다. 자영업자의 휴가는 이렇게 불시에 찾아오곤 한다. 


*


밀폐된 병동생활이지만 몸에는 늘 때가 묻는다. 한정된 공간에서만 생활해도 '살아있다'는 상태는 똑같기 때문일까. 머리는 오후만 되면 기름에 번들거리고, 몸에는 땀과 호르몬 냄새가 올라온다. 샤워를 하다가 문득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든다. 위로 고개를 들어보니 거미가 보인다. 작지만 다리가 굵고, 확실하게 나를 인식하고 있는 거미가 보인다. 남편도 없고, 이런 일로 간호사를 부를 수도 없어서 혼자 잡아보기로 결심한다. 근데 천장에 있는 걸 무슨 수로? 자연스럽게 나는 샤워 호스를 들고 물을 뿌렸다. 찬 물을 위로 아래로 좌우로 촥촥 뿌려봐도 거미는 흔들거리기만 할 뿐 떨어지지 않는다. 잔인하게도 나는 살상력을 높이기 위해 뜨거운 물을 틀어 뿌린다. 결론은 어떻게 됐을까? 풀 무장한 소방관 두 명, 경찰관과 보안요원 각 한 명, 간호사 대략 여섯 명이 방을 찾아왔다. 욕실 내 화재감지기가 뜨거운 물을 화재로 감지한 것이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나고, 이 시간에 고생한 모든 분들께 죄송스럽고, 난 왜 이런 엉뚱한 실수가 많을까 한탄스럽고,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대환장 파티일까 울분이 차오른다. 자기 자신이 한심스러운 순간이 있다. 나는 그게 '이번 주' 전체였을 뿐이다. 이미 벌어진 일을 어떻게 할 수는 없기에, 다음번의 내게는 조심하자고 다짐할 뿐이다. 

(참고로 거미도 아니었다. 안경도 안 껴서 흐려진 시야로 나는 움직이는 것으로 착각한 거다)


*

이런 내 소식을 접한 손님이자, 인생의 선배이자 친구는 이렇게 편지를 보내왔다.


"지기님의 이런저런 우당탕탕 사건들을 보면서 삶은... 계란이다, 라는 웃기지도 않았지만(?) 유행했던 농담이 떠올랐어요. 근데 생각하면 할수록 전 그런 거 같거든요. 삶은, 뜨거운 물속에 나를 내던질 때 내가 변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냥 맹물에 담겨만 있는 달걀은 익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아서, 먹는다 해도 비릿한 날달걀 그대로겠지만, 끓는 물에 들어간 달걀은 반숙이든 완숙이든 단단하게 바뀌잖아요! 이번 뜨거운 물 이벤트(?) 등등을 겪으면서, 지기님이 좀 더 단단해진 거라 생각해요. 제네시스는 좀 뼈아프지만?! 안 다쳤으면 그걸로 액땜한 거라 칩시다!"


여러분도 나와 같은 인생의 대환장 파티를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어쩌면 나보다 더할지도, 덜할지도 모르겠지만 각자가 각자의 무게로 힘든 것은 똑같을 것이다. 내게 너무너무 무거웠던 한 주, 그렇지만 버겁지만은 않았다. 이런 게 인생이란 걸 알고 있기에. 힘들어도 어쩔 것인가 삶은 점이 아니라 선이기에 계속 이어질 텐데. 삶은 살라고 있는 것이기에. 삶은 삶은 계란이다. 그 삶은 계란이 싱겁지 않게 간을 해주는 소금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


작가의 이전글 20. 인생의 대환장 파티를 경험해 본 적이 있나요?上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