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케이크가 그렇게나 먹고 싶다는 아들을 위해, 병원에서 보험 서류를 떼고서 빵집에 들렀다. '그래, 퇴원 기념이다! 먹어라!' 너무 신이 난 나머지 케이크 상자를 앞뒤로 흔든 아들 덕에 케이크가 찌그러졌지만, 그 마저도 사랑스럽다. 부랴부랴 저녁을 먹고 나니 다시 서점&카페로의 출근 시간이다. 독서모임이나 북토크쇼 등의 행사가 있는 날은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잠시나마 문을 열어두는데, 한 주에 3~4번꼴이니까 거진 매일 나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엄마 케이크는 안 먹어?"라고 묻는 아들을 뒤로한다. 케이크를 냉장고에 채 넣지도 못한 채 그렇게 나는 저녁 출근을 한다.
오늘 8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중간에는 잠시 아들을 돌보고, 오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하루의 반절, 10여 시간을 꼬박 이 공간에서 머문다. 오늘은, 참, 마음이 버겁다. '나는 지금 옳은 선택을 한 걸까?' 고무장갑을 벗고 보니 배가 축축하게 젖어있는 내가 보인다. 지금 시간은 오후 9시 10분. 어서 집으로 가야지. 어서.
집으로 향하는 15분은, 무념무상과 허무함이 덮치는 '현타'의 시간이다. 연체되어 있던 월세와 국민연금, 건강보험료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오늘에서야 남편이 내주었다. 내 앞에 놓인 여러 장의 독촉장은 내 경제 상황에 대한 성적표다. 연체가산금이 몇 차례나 누적되어 있는 내역이 부끄럽고 이내 초라하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출근한 것을 생각하니 현재가 너무도 계산적으로 되어버린다. '오늘은 북토크쇼로 총 4만 원의 순 수익을 얻었는데, 그마저도 작가님께 드릴 김밥사고 선물을 샀으니. 아들과의 시간도 잃었는데, 내겐 뭐가 남는 거지?' 내가 좋아서 한 일들을 철저히 계산하며, 가치 전환을 일으키는 내 자신이 너무도, 보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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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벅저벅 집으로 들어오니 아들이 다 구겨진 케이크 촛대를 내민다. "엄마, 생일 파티하자!" 아무도 생일이 아닌데, 그 누구도 축하할 수 있는 날이 아닌데 무슨 파티. 이런 나를 두고 아들은, "오늘 아빠 생일 아니야. 오늘 엄마 생일 아니야. 오늘 나도 생일 아니야. 오늘 엄마 축하해 주자"라고 말한다. 음정박자 다 틀린 축하노래, 고사리 손의 짝짝거림이 귀에 울린다. 수저로 듬뿍 퍼낸 딸기 케이크의 생크림은 혀를 휘감는다. 아, 기쁨만이. 오롯한 행복만이 가득하다. 이 감정의 전환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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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한 집을 조금이나마 정리하고 부엌 테이블에 잠시나마 멍하니 앉아있어 본다. 감정의 여운이 오래도록 머문다. 그때 아들이 내게 AAA배터리 두 개를 내 손에 쥐어준다. 어느 날부턴가 아들은 AAA배터리를 양손에 네 개씩 들고 다닌다. 마음 같아서는 다섯 개도 들고 싶지만, 딱 하나를 더 드는 순간 양손의 배터리 네 개가 우수수 쏟아져버린다. 그 뒤로 아들은 더도, 덜도 말고 딱 네 개만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위험할 것 같아서 숨겨놓으면, 어느새 장난감에서 배터리를 꺼내서 네 개를 딱 맞추었다. 저걸 도대체 왜 들고 다니는 걸까 의문이었다가, 오늘에서야 답을 얻는다. 아들이 두 손에 땀이 나도록 꼭 쥔 배터리 네 개, 그건 아들의 힘의 원동력이었구나. 번개파워맨의 에너지를 두 개나 받다니 과연 놀라운 일이다.
그런 우리를 돌아보는 남편은 픽 웃는다. "오늘 많이 힘들었지? 지금 운영하는 공간이 뭔가 애증의 관계가 되어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그 공간 덕분에 딸기 케이크 하나 사 먹잖아. 기운 내" 그래. 그의 말이 맞다. 얻은 건 이리 많은데, 나는 내 손안에 있는 것을 보지 못했구나. 자꾸만 한정 없는 보상 심리를 바라니, 괴로움을 스스로 짊어진 것도 진배없구나. 내겐 이토록 사랑이 주변에 가득한데, 그걸 잠시 잊었구나. 나는 지금 사랑 속에 살고 있구나. 나는 지금 행복한 순간에 머물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