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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May 12. 2023

26. 남동생과 함께 일합니다 下

나는 지금 한껏 '엄마'에 빙의되어 있다. 

"야, 가만히 있지 말고 좀 움직여서 먼지도 닦아내고 해! 꽃가루도 매일 쌓인다고!" 

"너 창업할 거라며? 사업계획 안 세워? 메뉴개발은 안 해?"

"손님 없다고 휴대폰 좀 그만 들여다보고, 책을 읽던가 해라!"


엄마의 잔소리 폭격기를 많이 맞아본 동생은 연륜의 힘으로 나의 틱틱거림을 극복해 낸다. 10년 차 군인의 짬바인지, 시키는 일은 묵묵하게 해치운다. 완벽한 표정관리와 빠르고 눈치 있는 업무처리. 이럴 때 보면 동생도 그 아프다는 '사회생활'을 잘 해냈구나, 잘 견뎌냈구나 대견함도 몰려온다. 아, 잠깐. "설거지를 하고 나면 주변에 물기를 닦아야지? 내가 두 번 일하게 되잖아!"

* 짬바: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의 줄임말로 오랜 경험이나 연륜으로 여유, 노련미를 표현할 때 쓰는 말


엊그제 동생이 짐을 싸고 이곳 진주로 내려온 것 같은데, 벌써 3주라는 시간이 지났다. 내가 새로 꾸린 가족 안에서 동생은 잘 녹아들어 갔다. 식탁에서는 늘 나의 대각선에 앉는다. 동생의 휴대폰 알람은 7시 40분에 울리고, 8시 30분쯤 조카의 양말을 신긴다. 출퇴근길의 운전은 늘 동생담당이 되었고, 늘 발라드만 듣는다. 특히 이적을 좋아하는가 보다(흥얼거리는데 굉장히 못 부른다). 손님들도 이제 동생을 '다나까 알바생'이라고 부른다. 무뚝뚝한 말투에 놀라던 손님들은 어느새 알바생을 놀린다. "다나까 말투에서 '다'랑 '까'는 알겠는데 '나'는 뭐예요? 밥뭇나! 이런 건가요" 동생은 능숙하게 대답한다. "다 or 까 라는 말입니다. 다 '나' 까라는 뜻입니다. 군대에서 '뭐 했나' 이럴 수 없죠" 우리들은 테이블을 쾅쾅 두드리기도 하고, 두 손을 거세게 부딪히며 깔깔거리며 웃는다. 이게 뭐라고, 또 그렇게 웃긴다. 


*


얼마 전 다나까 알바생은 진주 수곡에서 딸기농장을 하는 친구로부터 딸기를 받아왔다. 조그맣지만 실하고 아직 달달한 딸기를 하나하나 씻고 꼭지를 다듬는다. 부엌에서 쿵쾅거리며 딸기청과 딸기잼을 담은 동생은 나에게 맛보라며 스푼을 건넨다. 동생은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딸기잼에 거부감이 큰 편이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늘 주변 딸기농장에서 조그맣고 물러지기 일보직전인 딸기를 구해와 딸기잼을 만들었었다. 그런데 그 딸기잼 색깔이 누르팅팅했다. 먹기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색깔. 시각적인 것에 사로잡힌 나는 엄마의 딸기잼을 혀에 최대한 닿지 않게 빵으로 둘러싸서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 뒤로 나는 '수제' 딸기잼을 기피하고 공장식 대량제조 딸기잼만을 사 먹었다. 빨갛고 빨간 딸기잼을. 


동생이 건넨 스푼을 건네받는다. 일단 색깔은 합격. 아직 밥을 안 먹은 나의 위장도 딸기잼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폭신한 식빵에 딸기잼 콩알만큼 발라 입 안으로 넣어본다. 꿀! 꺽! "야! 당장 팔자!" 동생의 딸기잼은 딸기만의 상큼함과 싱싱함이 묻어 나왔다. 이런 게 수제 딸기잼이구나 처음으로 혀로 느껴본다. 동생은 까탈스러운 누나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에 기뻐서 한쪽 입꼬리만 올려 웃는다. 광대가 살짝 올라가고 눈이 조금 휘어지는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 어린 시절의 동생이 모습이 참 반갑다.


동생이 만든 딸기잼은 딱 7병이었다. '다나까 딸기잼'이라고 이름 붙은 이 딸기잼은 인스타그램에 올리자마자 매진되었다. 뒤늦게 아빠가 '저 2개 주문합니다'라고 댓글을 달았지만, 이미 매진되었다. 아빠도, 엄마도 맛보지 못한 동생의 딸기잼맛. 나는 맛봤지롱! 악동 같았던 어린 시절의 동생, 성인이 된 뒤로 타지에서 생활하며 알지 못했던 동생,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된 동생. 한 사람이 이렇게 다채롭게 다가온다. 오늘도, 나는 동생과 함께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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