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에는 평화라고 생각조차 못했던 8살 때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로 집에 있는 모든 창문이 열려있다. 바람은 늘 한결같이 불어오는 게 아닌지라 때로는 강풍처럼 휘몰아치기도 했고, 때로는 기를 모으는 듯 조용하기도 했다. 커튼의 펄럭거림을 통해서 바람의 강도를 체감할 뿐이다. 정수리까지 질끈 묶은 내 머리칼은 바람의 손짓을 반기듯, 강아지꼬리처럼 흔들흔들거린다.
오후의 햇볕이 잔잔히 들어오는 주말의 어느 날, 좌식 테이블 가운데에 앉아있는 나는 온몸으로 한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엄마, 또 연필이 부러졌어" 엄마는 다 깎아놓은 연필을 내게 내민다. 몇 글자 못써서 또 뚝, 하고 연필심이 부러진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깎아놓은 연필을 건네준다. 그리고는 틀린 글자를 손가락으로 짚어준다. 그러면 나는 지우개로 틀린 글자를 벅벅 긁고, 지우개 가루를 손날로 슥슥 털어낸다. 교과서 사이에 끼어있는 지우개 가루는, 교과서를 활짝 펼쳐서 탈탈 털어주면 해결! 나는 초등학교 입학할 때까지 한글을 몰랐다. 교정글자로 점철되어 있는 받아쓰기 시험지를 되려 자랑스럽게 내밀곤 했다. 학교에서 한글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다들 한글 정도야 다 떼고 입학한다는 소식을 접한 엄마. 그런 엄마의 급특훈이 시작된 날이다.
아, 갑자기 왜 그날이 떠올랐을까.
머리가 긴 손님이 손가락으로 빗질을 한다. 그 빗질에 걸려 나온 (구) 머리카락들은 바닥으로 팔랑거리며 떨어진다. 사각사각 기분 좋은 연필 소리는 늘 지우개의 쓱싹거림과 친구이기에, 지우개 가루는 사정없이 바닥으로 내팽개쳐진다. 그래서, 오늘의 나는 연필 대신 밀대를 손에 들었다. '청소'라는 일은 도대체 무엇이기에 왜 해도 티가 나지 않는 걸까. 청소를 한다는 건 왜 마침표가 없는 걸까. 늘 청소는 다음날을 기약하게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다음번에 서랍청소를 하자' 그런 무한 루틴. 분명 바닥을 박박 쓸고 나서 밀대로 물걸레질을 하고 있는 건데, 왜 자꾸 머리카락이 나오는 걸까? 빨대의 비닐껍질은 왜 이렇게 팔랑거리며 돌아다니는 거지? 지우개 가루는 바닥에 왜 이렇게 많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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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또박또박 내려쓰는 그날, 교과서 사이에 낀 지우개 가루를 탈탈 털어냈던 그날. 엄마가 보여줬던 복잡 미묘했던 그 표정을 오늘에서야 알 것 같다. '아이가 지금 손가락 부러져라 공부하고 있긴 한데, 지우개 가루 버린다고 뭐라고 해도 되는 걸까' 그때의 엄마의 속마음을 지금에서야 엿본 것 같아 살포시 웃음이 나기도 한다. '바닥'의 의미가 서로 간에 이렇게나 달랐구나. 집에서의 바닥은 무엇이든 떨어뜨려도 되었다. 뒤돌아서면 떨어진 물건이 주워져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었고, 다음날 눈뜨고 나면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카페에서의 바닥도, 식당에서의 바닥도 마찬가지였을 테지. 하지만 나는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그 바닥을 돌보는 사람이 되었다. 내게 바닥은 그 바닥이 더 이상 아니다. 바닥마저도 하나의 '공간'이 되었다. 청소해야 하고 정돈해야 하고 관리해야 할 그런 공간. 모두가 함께하는 쾌적한 공간, 모두가 머물다 가는 그런 안락한 공간.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공간을 닦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