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은 삶이 축적되어 가듯, 나만의 인명사전에 차곡차곡 늘어났다. 내 첫 이름은 '자연이'였다. 그 이름은 엄마의 태몽으로부터 시작한다. 푸르디푸른 초원 위에 올라가다 보니 낭떠러지가 보였다. 사람들은 다 포기했지만 엄마는 꼭대기까지 꾸역꾸역 올라갔다. 그 꾸역의 우직함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꼭대기 끝에는 대봉 홍시감이 열린 나무가 있었다. 너무나도 선명하고도 예쁜 빛을 띠고 있는 대봉 홍시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신기하고 아름답고 눈물이 맺히는 그런 대봉 홍시를, 엄마는 자연스럽게 가만히 놔두고 지켜보자고 결심한다. 그렇게 나는 '자연이'가 되었다.
그 이후 딸이라는 이유로 집안의 돌림자를 못 넣은 이름을 호적에 올렸고, 엄마아빠가 부르는 애칭 '똘이'를 이름으로 알았고, 친구들이 부르는 별명 '도우미'를 천성으로 받아들였고, 직장에 가서는 이름보다는 '주임'이라는 직함으로 불리었고, 나를 오롯한 이름으로 불러주는 남편을 만나 '도운이'라는 이름을 좋아하게 되었고, 지금의 서점 겸 카페를 운영하며 '사장님' 또는 '책방지기'로 알려졌고, 작가로도 활동하며 '채작가'라고도 불리었고, 곧 아들을 낳아 주변으로부터 '어머님'이라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내가 낳은 그 작은 존재가 나를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했을 때, 지금까지 내 인명사전에 등록된 그 어떠한 호칭보다 '엄마'라는 그 호칭이 가장 감격스러웠다. 나는 그 호칭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호칭이라 어떠한 감동도, 행복도 없기에 나는 정말 '엄마'가 되었다.
오늘 내 인생 처음으로, '학부모'라는 호칭을 달고 아들의 유치원 참관수업을 간다. '그동안 왜 다이어트를 입으로만 했을까' 내일 입을 옷을 고르며 한숨을 푹푹 내쉰다. 정장을 꺼내 들고, 내가 가진 가장 비싼 옷을 꺼내 입어보아도 영 어색하기만 하다. 격식 있는 차림에 어울리는 구두부터 가방 그 모든 것을 맞추기가 어렵다. 꽉 차있는 옷장 앞에서도 결핍과 공백을 느낀다. 내가 아닌 나를 꾸미고 포장하고 만드려 내려 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구나. 고민 끝에 나는 늘 입던 그 옷을 꺼내든다. 내가 가장 멋진 순간이 언제일까? 가장 나답고, 가장 나에게 어우리는 것은 무엇일까? 그 결론은 '일상'이었다. 매일의 고군분투가, 매일이 만들어낸 축적의 결과물이 오늘이듯, 나는 일상을 입기로 한다. 그래, 오늘은 '자연이'가 돼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