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웃음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엄마는 안다.
우리 아이가 있는 뉴턴반 앞에 엄마들이 일렬로 서있다. 서로 안면이 있는 엄마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첫 아이의 첫 참관이라는 '처음'의 막중함에 긴장감을 드러내며 경직된 엄마들도 보인다. 물론 나도 그렇다. 드디어 시간이 되고 교실 문이 열린다. 열린 문 사이로 눈이 재빠르게 탐색한다. 아이가 생활하는 교실의 전반적인 환경상태나 선생님을 자세히 살펴봐야겠다는 나의 결심이 무색하게, 오롯이 한 아이만 보인다. 나를 향해 어색하게 웃음을 드러내고 있는 저 한 아이만이. 늘 곁에 달고 다니는 아이이지만, 오늘 보여주는 웃음은 무언가 새롭다. 엄마를 만나 마냥 반갑지만 감정을 절제하려 노력하는 입꼬리. 그렇지만 숨길 수 없는 볼록 튀어나온 광대. 낯선 사람들이 우르르 등장하며 조금은 부끄럽고 긴장되는 상태.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나니 한 시간이 찰나처럼 지나간다. "이제 모든 활동이 끝났습니다"라는 선생님의 말, 헤어짐을 직감한 아이들은 '엄마'를 외치며 운다. 한 아이가 울기 시작하니, 모든 아이가 울먹거린다. "엄마가 과감하게 떠나 주셔야 아이들이 편합니다"라는 선생님의 말이 맞다는 걸 알면서도 단호하고 매정하기만 하다. 엄마의 옷자락을 붙잡는 아이들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떼놓는다. 엄마의 뒤를 쫓아오는 아이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교실을 나가기 위해 애쓴다. 끝까지 쫓아와 다리를 부여잡는 아이에게 "자리에 가!"라고 엄하게 말해본다. 아이의 연약한 겨드랑이 사이에 어른의 강한 두 팔을 넣어 힘으로, 떼어낸다. 참관수업이, 아이의 감정에 폭력적일 수 있겠구나. 하교하면 어차피 볼 아이인걸 알지만, 영원한 헤어짐이 아닌 걸 알지만. 왜 이렇게 감정이 갈무리가 안되는지. 절로 입술이 깨물어지고, 매몰찬 등 뒤편에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울부짖는 내가 있다. 이런 게 바로 '헤어진다'라는 뜻이구나. 머리로 알고 있던 창백한 관념 속의 단어를, 드디어 이해한다.
우리 아들은, 끝내 울지 않았다. '엄마'하고 뒤쫓아오지도 않았고, 되려 자리에 제일 먼저 돌아가 앉았다. 이런 아들이 참 '의연하구나' '단단하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틀렸다. 아이의 시선은 끝내 나를 놓지 않았다. 아이는 싱긋 웃으며 나에게 안녕을 고했다. 손을 흔들지도 않았고, '잘 가'라고 인사하지도 않았지만, 그 웃음이 '안녕'의 의미였다. 그렇기에 차라리 우는 게 더 나았겠구나 싶을 정도로 슬픈 웃음이었다.
집에 와서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엄마 갈 때, 마음이 어땠어?"
아들은 고민하다가 말한다. "울고 싶었는데, 울기 싫었어.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네가 배운 '헤어짐'이라는 단어. 울고 싶었으나 울지 않았던가, 혹은 울지 못했던가 하는 그 감정.
오늘 나는 새로운 너를 알았고, 배웠고, 또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