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매한 인간 Feb 20. 2019

18. 남겨진 음료, 남겨진 나

<남겨진 음료, 남겨진 나>


오늘은 여자 세 분이 오셨다. 서로 친구인지 엄청 행복해 보였다. 환하게 인사하고 주문을 받았다. 친구답게 세 분 다 아이스 바닐라 라떼를 시켰다. 바닐라 파우더, 시럽, 우유를 잘 섞어 만들었다. 바닐라 라떼는 자신 있었다. 스타벅스 바닐라라떼만 마시는 친구도 인정한 라떼니까! 


음료가 나가고 손님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귀를 쫑긋했다. 손님들은 속닥속닥 이야기한다. 보통 맛있으면 좀 큰소리로 이야기하시는데, 조용하면 맛이 없다는 이야기다. 나는 온몸에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자세히 들어보고 싶은데 손님들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 음악소리에 묻혔다. 나는 한숨을 쉬고 다시 내 일에 집중했다.


한 시간 뒤 손님들이 나가셨다. 나는 바로 테이블로 뛰어갔다. 내 불안한 짐작이 적중했다. 손님들은 음료를 다 남기고 가셨다. 한 분은 절반 정도 드셨고, 다른 한 분은 전혀 안 드셨다. 음료와 같이 나간 쿠키도 남겨져 있다. 이렇게 남은 음료들을 보면 가슴 아프다. 내가 만든 게 맛없다니 슬펐다. 그보다 더 슬픈 건 비싼 돈 내고 먹은 손님들의 기분을 생각할 때다. 이렇게 남길 음료를 돈 주고 마신 손님들은 얼마나 짜증 날까. 


나는 주방으로 돌아와 남은 음료를 마셔본다. 내 입맛에는 딱 맞다. 뭐가 문제인 걸까. 다른 두 잔에 담긴 바닐라 라떼도 내 입으로 집어넣었지만 문제점을 못 찾겠다. 쿠키도 먹어본다. 바삭바삭 코코아 쿠키. 뭐가 문제였을까. 갑자기 이런 상황이 답답하다. 꼴 보기 싫은 쿠키와 남은 음료를 곧장 싱크대에 부었다. 쏟아지는 음료를 바라보고 있자니 착잡하다.


오후 내내 신경이 쓰였다. 왜 남겼을까. 뭐가 문제일까. 나는 카페에 가서 음료를 남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맛없어도 돈이 아까워서 다 먹고 나왔다. 그런데 남길 정도면 얼마나 맛이 없다는 건가. 혼자 고민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곧바로 카페 사장들이 모인 네이버 카페에 가입했다. 힘들게 등업 신청을 한 뒤 내 고민을 나눠보았다. 사장님들이 속속 댓글을 달아준다. 이 문제에 대한 공통적인 답변은 하나였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


조금 밍밍한 맛을 좋아하는 손님, 단 맛을 좋아하는 손님, 진한 맛을 좋아하는 손님. 세상 모든 사람의 입맛은 같지 않다. 각자의 기호가 있다. 원두도 마찬가지다. 카페를 시작할 때 원두를 고르는 것이 가장 난관이다. 콩의 원산지에 따라서, 로스팅한 강도에 따라서, 각 원두를 어떻게 믹스하냐에 따라서 신맛, 고소한 맛, 담백한 맛 다양한 맛의 커피가 탄생한다. 그리고 각 고유에 맛에 따라 아메리카노에 잘 어울리는 원두, 라떼에 잘 어울리는 원두가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 작은 카페에 1가지 이상의 원두를 고르기 어렵다는 점이다. 원두의 소비량, 공간, 장비, 예산 등을 고려했을 때 아메리카노나 라떼에 무난하게 어울리는 원두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맛도 뭔가 아쉽게 된다. 이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쿠키도 서비스하고, 보다 친절한 응대를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역시 아쉽긴 아쉽다. 

.

.

.

카페 사장이 되기로 결심한 이상 담대해져야 한다. 손님이 남긴 음료에 상처 받지 않을 담대함이 필요하다. 면전에서 맛없다고 해도 웃고 넘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무례한 손님이 와도 '죄송하다', '감사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연기가 필요하다. 단돈 백 원, 천 원 때문에 구차해지는 나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 


동시에 끊임없는 노력도 필요하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어도, 카페에 방문하는 99.8%의 손님들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은 혼자만의 싸움이다. 다양한 입맛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고정된 맛을 잡아내는 것. 끊임없이 맛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멈추지 않고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것. 치열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함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낀다.



그 사람들이 커피를 안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시켰을 수도 있어.
혹은 한 잔을 시키면 다 못 마시는 손님일 수도 있고.
난 네 바닐라라떼 좋아해.

- 그 날 바닐라라떼를 시식하러 온 친구 曰 -









작가의 이전글 #매일 신박한 또라이를 만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