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런 시기가 있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물줄기, 어깨를 투둑투둑 다독이는 물소리를 들으며 모든 긴장이 해체되는 순간 읊조리게 되는 한 단어, ‘시발.’ 샤워하는 내내 욕지거리를 지껄이고 나서야 개운한 마음으로 침대에 쓰러져 누워 자기 일쑤인 하루들. 그런 조금 고단한 시기가 누구에게나 있다. 나는 그 시기가 사회 초년생으로 첫 직장생활을 했을 무렵이었고, 퇴사를 하고 나서야 부모님으로부터 내 샤워습관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진심으로 놀라고 말았다. ‘내가 샤워하면서 욕을 한다고?’ ‘엄마, 아빠는 그걸 듣고 있었다고?’ 부모님은 딸이 스트레스를 푸는 하나의 방법이겠거니 하고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욕실너머로 던져지는 상스러운 욕설을 들으며, 무려 사 년 동안.
타인으로부터 나의 무의식적인 언행을 확인받고 나서야, 나는 일상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과연, 나는 머리를 감으면서 시발, 헹구면서 시발거리고 있었다. 나는 악으로 가득 차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말과 행동으로 그 악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나는 이 일이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란 걸 알았다. 직장 동료들, 동네 이웃들, 친구들 그 모두가 갖고 있는 공통 경험이었다. 그들 모두 자신 안에 악을 차곡차곡 쌓고, 도저히 얹을 공간이 없을 때쯤이 되어서야, 자신 밖으로 악을 슬금슬금 흘려보냈다. 어떻게든 마음이 살아보고자 하는 행위이건만, 혼자 읊조리는 욕은 결국 제 귀에 고스란히 들어오고야 만다. 가족의 마음에까지 침범하고야 만다.
세상에는 지용성 스트레스와 수용성 스트레스가 있다고 한다. 기름진 돼지고기나 막창, 곱창 같은 음식을 먹으며 악을 기름으로 녹일 수 있는 지용성 스트레스와 나와 같이 샤워하며 물로서 해소할 수 있는 스트레스인 수용성 스트레스. 기름과 물로도 도저히 사라지지 않을 만큼 스트레스가 누적됐을 때, 나는 내 안의 악을 내보내기 위해 회사에서 나를 추방시켰다. 그 결과 현재의 보틀북스를 차리게 되었으니, 추방당한 변두리에서 나만의 세계를 구축한 셈이었다. 그 세계에서도 물론 후회와 고뇌가 없을 수는 없었으나, 혼자 욕을 해대던 버릇은 없어졌으니 제법 심신의 안정을 얻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남편이 내게 소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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