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매한 인간 Feb 23. 2019

21. 애매한씨와 관리비 고지서

애매한 카페의 이웃들, 모두 힘내요!

<애매한씨와 관리비 고지서>


애매한씨의 애매한 카페는 두 동짜리 아파트 앞의 자그마한 건물에 있다. 그 건물은 전체면적 66㎡ 규모의 1층짜리 건물이다. 건물주는 그 공간을 절반으로 나눠 임대를 내놨다. 둘 중 하나에 애매한씨가 입주한 애매한 카페가 있다. 다른 하나는 아직까지 '임대·입주문의 환영' 플랜카드가 나부끼고 있다. 애매한씨의 카페 맞은편에 있는 두 동짜리 아파트는 공실률 50%에 육박한다. 공실률을 매워주려는 듯 아파트 주변에는 꺼무죽죽한 고양이랑 주홍빛 얼룩이 고양이들이 무리 지어 산다. 애매한씨는 가끔 고양이들과 눈을 마주친다. 서로 이웃임을 확인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애매한씨는 오픈한 지 세 시간이 지나서야 첫 개시를 했다. 애매한씨는 애매한씨의 취향인 팝 음악을 잔잔한 재즈음악으로 바꿨다. 가끔 음악마다 소리 크기가 다른 경우가 있다. 애매한씨는 그때마다 볼륨을 높였다, 줄였다 하며 적정한 분위기를 유지하고자 애쓴다. 첫 손님은 여유로운 분위기를 양껏 즐기다가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카페를 나간다. 한 시간쯤 지나서 새로운 손님이 왔다. 아, 이번엔 손님이 아닌가 보다. 애매한씨는 누렇고 빳빳한 종이 한 장을 받는다. 그 종이에는 '관리비 내역 및 고지서'라고 써져 있다. 애매한씨는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네고 고지서를 뜯어본다.


77,770원.


럭키 세븐. 애매한씨는 운이 좋은가보다. 그런데 애매한씨의 표정이 좋지 않다. 고지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전월 관리비는 48,890원. 일반 관리비, 청소비, 경비비, 소독비 모두 올라 총 28,880원이나 더 부과됐다. 2019년에는 7만 원 이상의 관리비가 매달 부과될 것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앞으로는 방역비, 환경개선비, 소방비, 전기 안전비, 주차 관리비 등 여러 명목의 비용이 덕지덕지 붙을 것이다. 애매한씨는 한숨을 쉰다.


"어제 깜빡하고 난방기 켜놓고 갔는데..."


애매한씨는 전기세도 오르고, 물가도 오르고, 관리비도 오르는데 왜 매출은 안 오르는지 걱정이다. 애매한씨는 관리비 고지서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생각해보니 억울한가 보다. 애매한씨는 혼자 구시렁거리기 시작한다.


"아니 생각해보니까, 관리하는 게 뭐 있다고 이렇게 올려서 받는 거지?

10평도 안 되는 카페인 데다가 손님도 없는데 공동시설에 관리할게 뭐 있는 거지?

생각할수록 억울하네. 관리소 가서 따질까?"


한참 동안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애매한씨는 곧 체념했다. 괜한 곳에 화풀이하지 말자고 마음을 고쳐 잡는다. 애매한씨는 애매한 카페의 이웃들을 떠올려본다.


꺼무죽죽한 고양이, 주홍빛 얼룩이 고양이.

그리고 추운 날씨에 밖에서 쓰레기를 주우시는 환경미화원 아주머니.

카페를 오픈하고 닫는 동안 애매한씨를 지켜주는 경비 아저씨.

애매한씨의 편의를 봐주려 항상 애써주시는 관리소 소장님.


애매한씨는 때마침 입금된 자동차 사고의 위로금 10만 원 중 77,770원을 계좌 이체했다.

애매한씨는 애매한 카페를 쭉 둘러본다. 그리곤 또다시 중얼거린다. 우리 힘내 보자고.

애매한씨와 애매한 카페, 그리고 카페의 이웃들을 향해 그렇게 중얼거린다.



작가의 이전글 #지저분한 바탕화면이라는 훈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