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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Jan 30. 2019

2. 애매한 우정

카페 오픈을 축하하며, 우리의 '애매한 우정'을 기리며-

<2. 애매한 우정>



카페를 오픈하면서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 그리고 직장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오픈을 축하한다며 화분을 들고 찾아오는 좋은 사람들- 고마우면서도 미안하다. 오늘은 웬일로 중학교 동창이 왔다. 나는 졸업사진을 찍을 때쯤 전학을 가서 친구가 많지 않다. 오늘 온 동창은 전학생인 나에게 수학 문제를 알려준 친구다. 그때의 마음이 고마워서 고등학교를 가서도 몇 번 만나곤 했다. 이 친구가 카페를 찾아온다니 반가웠다. 친구는 카페에 와서 음료를 시켰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우리 카페 인기 메뉴인 와플을 구워서 갔다. 친구는 자리를 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솔직히 이 친구랑 이야기하면 기가 빨리곤 한다. 부정적인 기운을 담고 있는 말들, 그리고 힘껏 과시하는 몸짓들에 지친다. 오늘도 역시 다르지 않았다. 대학교를 안 가서 후회된다는 이야기, 일하는 게 짜증 나고 힘들지만 돈은 많이 번다는 말- 처음에는 가슴 아팠다. '이 친구에게 더 좋은 기회와 환경이 있었으면 달랐을 텐데'라는 아쉬움도 있었다. 그러나 반복되는 이야기들은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심지어 카페에 보기 힘든 손님도 있는데...'


친구는 앉아서 앞으로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다. 대학을 가야 할까 고민하는 친구에게 형식적으로 하는 조언을 해줬다. 방통대(방송통신대학)에 입학해 공부하면서 일을 해보라던지, 일하면서 배운 기술을 더 갈고닦으라는 등. 그리고 연애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딱히 없었다. 그 친구가 애늙은이 같은 점이 있어서, 전 여자친구들이 고달팠을 거다. 그저 '그 여자가 별로였네, 앞으로 열심히 소개팅 해'라고 뻔한 말만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두 시간이나 지났다. 나는 그 두 시간 동안 핸드폰을 몇 번이나 만지작 거렸는지 모른다. 이야기 도중 휴대폰을 보는 건 '이 대화가 재미없으니 이제 끝내고 싶어요'라는 간접적 표시였다. 그 친구는 눈치가 없었고, 나는 빠르게 지쳤다. 휴대폰이 통하지 않으니 다른 걸 해야겠다 싶어서, 설거지를 했는데 실패했다. 결국 난 책을 집어 들었다. 대화 도중 책을 펼친 건 처음이다. 대놓고 이제 대화 그만하고 싶다는 표시가 아니었을까? 그 친구는 그제야 두터운 코트를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그러곤 '수고해라~' 이 한 마디를 남기고 갔다. 


정말 그 한 마디만 남기고 갔다. 그러니까 주문한 음료 세 잔(긴 시간 동안 이야기하며 목이 말랐는지 커피를 세 잔이나 주문했다), 와플 값을 치르지 않고 그냥 나갔다. 그 흔한 화분 하나 안 사 와도 괜찮았다. 와준다는 것 자체가 너무 반갑고 기뻤으니까- 게다가 친구에게 음료를 서빙하며 '빵은 내가 서비스로 줘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친구는 커피 값마저 계산을 하겠다는 조금의 제스처도 없었다. 어차피 받고 싶지 않았다. 일부러 생각해서 와준 거니까 고마웠다. 게다가 최근에 일을 그만뒀다고 해서 마음도 쓰였다. 그런데 서운했다. 계산하겠다는 제스처조차 없다니! 


사실 그 친구와의 추억은 그렇게 많지 않다. 중학교 때 몇 개월 보고, 고등학교 이후로 두어 번 본 게 전부였다. 그래, 그 친구와 나는 '애매한 우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친하지 않지만 친한 것 같은 그런 관계. 그 친구에게 나는 의리를 발휘해서 도와줘야 할 친구로 남아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애매한 우정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정도로 우정이 없을지도 모른다. 


친한 친구였다면 아깝지도, 아쉽지도 않았을 것 같다. 문제는 이 '애매함'이다. 애매한 관계로부터의 부담이 너무 싫다. 애매한 친구, 애매한 연인, 애매한 사회관계 등- 나는 살면서 이러한 '애매한' 관계를 얼마나 많이 맺고 있을까? 친하고, 안 친한 사람이라는 이분적 관계가 편하다. 그럼 쉽잖아. 친한 사람은 나의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이니까 잘해주고, 아닌 사람은 아닌 거고. 마음의 상처도 안 받아도 되잖아? 이런 나는 이기적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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