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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Mar 07. 2019

32. 저는 '어이, 아가씨'가 맞는듯합니다.

('어이'는 좀 애매하긴 합니다만.)

<저는 '어이, 아가씨'가 맞는듯합니다.>

 feat. '어이'는 좀 애매하긴 합니다만.


대학생 때 여자라면 꼭 한 번씩 듣게 되는 말이 하나 있다. 바로 남자 선배들한테 '오빠'라고 부르지 말라는 것. 남자들은 괜히 '오빠'라는 소리만 들으면 가슴 설렌단다. 여자 선배들한테도 '언니'라고 부르지 말고, '선배'라고 깍듯이 불러야 했다. 나는 착한 신입생이었고 '오빠'대신 '선배'라고 부르게 됐다. 아니면 형님의 줄임말 '햄'이라고도 부르기도 했다. 여자 선배들에게도 '선배'라고 불렀다. 간혹 가다 정말 정말 정말 친한 여자 선배에게는 '언니'라고 불렀으나, '언니'라고 부를 수 있는 건 특권이었다. 학년이 올라가자 새로 입학한 신입생들에게 똑같이 가르쳤다. 남자 선배들한테 '오빠'라고 부르지 말라고, 남자들은 괜히 '오빠'라는 소리만 들으면 가슴 설레 한다고. 괜히 '오빠'라고 불러서 여우라고 찍히지 말라고 말했다. 우리에게도 '누구누구 선배님'이라고 부르면 된다고 가르쳤다. 후배들은 또다시 입학한 신입생들에게 똑같이 가르쳤다. 그렇게 호칭은 관행이 되고, 법이 되어 대물림되었다. (해당 부분은 삭제합니다. 2019년 3월 7일)


대학교를 졸업하고 입사한 회사에서도 마찬가지 었다. 나이 상관없이 먼저 들어온 사람이 선배다. 그리고 선배를 부를 때는 성, 이름과 직함을 같이 불러야 한다. 애매한 대리님, 애매한 과장님, 애매한 팀장님처럼- 언젠가 한 번 성을 빼고 이름과 직함을 불렀다가 혼났다. 누군가는 이름을 빼고 성과 직함을 불렀다가 혼났다. 무조건 풀네임과 직함을 같이 불러야 한다는 새로운 관행, 그리고 법을 배웠다. 연차가 쌓이자 새로 입사한 후배들에게 똑같이 가르쳤다. 간혹 후배들이 '매한씨', '매한 사원님', '애 사원님'이라고 부르면 움찔했다. 저 버르장머리 없는 후배에게 어떻게 좋게 타이를까 고민했다. 후배들은 커피 한 잔을 통해 새로운 직장예절, 관행, 그리고 법을 배웠다. 그리고 후배들은 또다시 입사한 신입직원들에게 똑같이 가르쳤다. 그렇게 호칭은 관행이 되고, 법이 되어 대물림되었다.


직장을 퇴사하고 카페를 오픈하자 나를 가리키는 호칭이 애매해졌다. 누군가는 나를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누군가는 나를 '저기요'라고 부른다.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제스처로 나를 부른다. 오늘은 새로운 호칭을 얻었다. '어이, 아가씨.' 호칭만으로 이렇게 기분이 나쁠 수 있구나를 깨닫는다. 동시에 웃으면서 표정관리를 잘하는 나를 바라보니 '직장생활을 헛으로 한건 아니구나' 싶다. 아가씨가 손님에게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라고 웃으며 다가갔다. 손님은 커피와 같이 먹을 다과 거리를 더 가져오라고 하신다. 아가씨는 손님들 입가심하라고 챙겨놓은 유과를 몇 개 꺼내간다. 잠시 뒤 손님이 또 부른다. "어이, 아가씨." 아가씨는 손님에게 다가간다. 손님은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낸다. 아가씨는 만 원을 양손으로 받고, 아메리카노 한 잔 값을 제외한 6천5백 원을 거슬러드린다. 아가씨는 잔돈을 건네드리며 살짝 기대를 해본다. '다방에 오셨으니 팁을 주시겠지.' 손님은 6천5백 원을 호주머니에 넣고, 빈 그릇을 건넨다. 아가씨는 또다시 웃으며 유과를 리필해드린다. 


그런데 문득 의아해졌다. 왜 '어이, 아가씨'라고 부른 손님의 말에 기분이 나빴던 걸까? 손님이 나를 부르는 하나의 호칭일 뿐이다('어이'는 좀 애매하긴 하지만). 손님 입장에서는 여자 사장님이니까 '아가씨'라고 부른 것뿐일 테다. 언제부터 우리는 호칭이 주는 권위에 익숙해졌던가? 정해진 호칭 외의 것을 부르면 기분 나빠하는 게 당연한 것, 그것은 호칭이 주는 달콤한 권위 감에 물들어 있던 것 아닌가? 우리는 얼마나 호칭에 얽매어 있는가. 우리는 왜 호칭에 얽매여서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는가.


나를 불렀던, 그리고 부르는 수많은 호칭들. 그것은 나의 신분이다. 나를 대표해주는 단어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나를 억압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학생이니까 하면 안 돼', '과장이면 과장다워야지', '어른이면서 아직도 철이 안 들었어?', '사장이 쉬면 안 되지.' 또한 호칭은 내 자존심을 갉아먹는 단어이기도 하다. '난 과장급인데 아직도 대리라니', '사장인데 돈을 좀 벌어야 하는데.' 뿐만 아니라 호칭은 내 이름을 잊게 한다. 주변 사람들이 '학생'이라고 부르니까 '학생이니까 괜찮겠지'라고 변명한다. 회사가 주는 달콤한 직함에 빠져서 '나는 이 정도는 되니까'라고 과시한다. 손님들이 불러주는 '사장님'이라는 새로운 호칭에 '나는 퇴사했지만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아니야'라고 자기 합리화를 한다. 하지만 이러한 호칭들을 다 빼고 나면 나라는 사람의 본질이 보인다. 나라는 사람의 진짜, 본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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