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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Mar 05. 2019

30. 음악을 통해 깨닫는 '애매함' - 카페/직장에서

<음악을 통해 깨닫는 '애매함' - 카페/직장에서>


1. 음악을 통해 깨닫는 '애매함'♬ - 카페에서

카페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음악이다. 재즈, 팝, 발라드, 인디 등 장르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나는 '애매한 인간'답게 좋아하는 음악 장르도 애매하다. 약간 재즈 같으면서도 팝 같고, 때로는 잔잔하면서도 그루브 있는 인디 곡을 선호한다. (캐나다 가수 마이클 부블레(Michael Buble)를 강력히 추천한다) 카페에서도 재즈 같으면서도, 몸이 들썩들썩하는 팝이 흘러나온다. 그러면 또 잔잔한 발라드가 흘러나와 분위기를 쥐락펴락한다.


너무 취향대로일까? 그런데 의외로 애매한 장르는 생각보다 사람들의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켜 준다.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간간이 들리는 재즈 선율을 귀담아듣는다. 또 어떤 손님들은 열심히 이야기하다가 팝이 들리면 가사를 흥얼거린다. 혼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 좋아하는 손님들은 잔잔한 발라드에 조용히 책을 읽는다. 장르 분물, 모호한 곡들이 가득한 플레이리스트지만 많은 손님이 선곡을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걸 봐선 성공한 것 같다.


새삼스럽게 '애매함'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애매한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때로는 그 '애매함'이 모든 걸 포용해주는 것만 같다. 이것도 좋아하고, 저것도 좋아하는 나의 애매한 취향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애매한 취향은 더 많은 장르의 문화를 접하고, 즐기는데 거부감이 없다. 성격도 마찬가지다. 확고하고 단호한 하나의 성격보다, 나쁘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착하지만도 않은 애매한 성격 덕분에 더 많은 사람과 어울릴 수 있었다. 또한 '애매함'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해 개선의 여지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글도, 그림도 애매하게 할 줄 아는 나는 화가의 꿈도, 작가의 꿈도 포기했었다. 그런데 어느새 브런치에 '애매한 인간'으로 불리며 그림도, 글도 쓰고 있다. 부족한 점의 상호보완이라고 해야 할까? 문득 애매한 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는 하루다.



2. 음악을 통해 깨닫는 '애매함'♬ - 직장에서

칙칙한 사무실에서 앉아서 일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일하면 더 신날 것 같은데.' 그래서 나는 캐비닛 구석에 있던 회의용 블루투스 스피커를 틀었다. 마침 그날따라 우리 팀에서 야근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음악을 틀어놓으니 그 세상에 나만 있는 것 같았다. 우중충한 사무실이 한 단계 포근해진 느낌이었다. 야근으로 지쳐있던 나에게 힘내라고 다독여주는 것만 같았다. 음악은 그렇게 나를 어루어 만져 주었다. 다음날 나는 이어폰을 챙겨 왔다. 전화를 받는 왼쪽 귀를 제외하고, 오른쪽 귀에만 이어폰을 끼웠다. 그리고 항상 질끈 묶는 머리를 풀어헤쳐 이어폰 줄을 가렸다. 괜히 오른쪽 귀에 턱받침도 하면서 숨기려고 애썼다. 그렇게 음악을 한 곡, 두 곡 들으면서 보고서를 쓰니 술술 잘만 써진다.


어느 날 프로젝트에 문제가 발생해서 해결방안을 두고 팀장님과 가벼운 언쟁을 벌였다. 실무자로서 생각했던 해결책과 관리자로서 생각했던 해결책이 달라서 나온 팽팽한 의견 대립이었다. 이 사건 이후로 팀장님이 나를 보면 언짢은 표정을 짓곤 했다. 나는 참 표정관리도 애매하게 하는 직원이었다. 팀장님의 표정을 보면, 마음은 평정심을 유지하고자 애썼으나 표정은 나도 모르게 찌푸려져 있었다. 그런 모습이 더 안 좋게 보였을거나 분명. 팀장님은 굳이 표정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팀장님은 어느 정도 솔직히 자기의 기분을 표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난 그래서 바로 알았다. 팀장님이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가슴 아픈데, 그 사람이 직장 상사면 더 고달프다. 팀장님은 본인이 싫은 표정을 지어도, 웃는 부하 직원을 원했다. 대놓고 싫다고 말해도 살살 웃으면서 '왜 그러세요. 팀장님~'하고 능청스럽게 넘길 수 있는 유한 성격의 부하 직원을 원했다. 애석하게도 난 그렇게 사회생활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렇게 팀장님과 나의 감정대립은 며칠을 이어가고 있었다.


다음날 나는 여느 때와 같이 한쪽 귀에 몰래 이어폰을 꽂으며 업무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과장님이 탕비실이 텅텅 비자 잔소리를 따발총처럼 해댄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안 나쁘다. 한쪽 귀에서 들리는 경쾌한 멜로디가 나를 진정시켜준다. 나는 기분 좋게 웃으며 "죄송해요, 곧 채워 넣을게용.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과장님~"하고 애교를 피운다. 과장님도 웃는 얼굴에 침은 못 뱉는지, "어휴, 그래 시간 되면 채워놔"라고 마무리한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런 게 정말 사회생활의 정석이라는 것을!


나는 엄청나게 꽝꽝거리고, 듣기만 해도 몸이 들썩들썩하는 음악 3곡을 골랐다. 약 10여 분간의 시간 동안 업무는 다 내팽개치고 그 음악 3곡을 집중해서 들었다. 내 몸 어딘가에 숨어있는 엔돌핀을 모두 끌어올리기 위해 애썼다. 노력이 결실을 보이는지 손, 다리가 자기들끼리 쿵 쿵짝거린다. 마지막 세 번째 곡이 마무리되자, 난 바로 팀장님께 뛰어갔다. 아주 신나고 귀여운 목소리로 팀장님을 부르며. "팀장님!" 팀장님은 나를 보자마자 "무슨 좋은 일 있어?"라고 묻는다. 나는 팀장님께 싱글벙글 웃으며 말한다. "팀장님, 우리 날도 너무 좋은데 사다리 타기할까요? 아니면 맛있는 과일주스 한 잔씩 하실래요? 오랜만에 팀원들이랑 다 같이 간식 타임 어때요? 팀장님, 네? 네?" 팀장님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콜."

 

음악으로 만들어진 웃음이었지만, 음악으로 만들어진 능청스러움이었지만 팀장님이 "콜"이라고 대답한 순간 팀장님과 나 사이의 앙금이 사르륵하고 풀렸다. 팀장님과의 감정대립은 나에게도 짐으로 남아있었나 보다. 먼저 다가가길 잘했다고 생각이 든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솔직히 내가 먼저 다가가서 웃으며 말을 건네는 게 쉽지 않았다. 자존심도 상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쩌겠는가? 나는 부하 직원이고, 저쪽은 상사인데 ㅡ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팀장님도 사람이었다. 팀장님이 직원들처럼 일은 하지 않지만, 팀장으로서 무언가 '결정'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힘들었겠지. 팀장님도 직원들처럼 칙칙한 사무실에 앉아서 8시간 이상 있으니 휴식이 필요했겠지. 팀장님도 나와의 관계가 좋지 못하다는 사실이 미해결 된 숙제처럼 남아 있었겠지?


뭐, 며칠 뒤 또 팀장님과 싸운 거로 봐서 팀장님과는 절대 가까워질 수 없는 애매한 관계인가 보지만.

뭐, 항상 직원이 팀장님께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사실은 애매하지만 거슬리지만.

뭐, 회사에서는 음악을 들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 애매하게 불합리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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