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향점이자 지향점이 아닌 그곳
15년 전쯤. 서울역 앞에 있는 회사에 근무했었다.
항상 우울했다.
직급은 같으나, 나이는 10살 많았던 선배는 아침마다 나에게 악담을 퍼부었고,
일에 중독된 환갑을 바라보는 상사는 한 가지 자료를 만들려면 10번씩 수정했다.
일을 잘하시는 분이었고, 결단력 등, 배울 점이 많았지만, 같이 일하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게다가, 상사분은 점심을 안 드시는 분이었고, 동료는(같이 먹자고 할까 봐 겁은 났지만) 내가 입사한 첫날부터 나를 혼자 점심 먹게 했다.
지금 같으면 그럴 수 있어... 할지도 모르겠으나, 그때는 쿨하지 못한 때여서, 뭐 이런가... 정말 서글펐다.
가끔 점심시간에 혼자 일찌감치 지갑을 챙겨 나왔다. 주로 간 곳은 신세계 백화점 지하 아니면, 서울역 버거킹이었다.
서울역에서 밥을 먹으면 나도 모르게 물끄러미 바로 보던 때가 있었다.
기차를 보면서, 저걸 타면 부산에 가는구나... 한번 타볼까... 가슴속에 타임머신처럼 다른 시간대로 다른 장소로 도망가게 해 줄 교통수단으로 보이던 뱀처럼 긴 기차.
언젠가 용기가 생기면, 난 저 차를 타고 근무시간 중에 도망갈 것이라는 머릿속으로 그리던 그 짜릿한 일탈, 불안감이 참 재밌었다.
그런데 이런, 오늘 부산행을 타고 출근한다.
이것은 일탈과는 거리가 먼 너무도 성실 근면한 모습으로 기차에 차분히 앉아 동탄 도착하기 전에는 자야겠다는 일탈 아닌 일탈을 결심한다. 그리고.... 오늘은 대전에 가지 않으리 꼭 오송서 내리리 결심을 하면서 말이다.
이 우스운 상황을 받아 들어야지 뭐.
알고 보면 그때 신께서 보여주신 것이다.
너는 저 기차를 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일탈은 허락하지 않겠다며.
내 뜻인 듯 내 뜻 아닌 삶이 그냥 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