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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짓기 Oct 26. 2024

문턱

시댁집안의 평균키를 깎아먹은 주범이 되어버린 나는 어릴 적부터 작은 키 때문에 자주 주눅이 들었다. 친구들과 고무줄뛰기를 할 때면 나보다 큰 친구와는 고무줄뛰기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체육시간 뜀틀 앞에서도 뛰어넘을 생각은커녕 뜀틀 앞에 우두커니 서서 선생님께 혼나기도 했던 어린 기억이 새록하다.

결혼 후, 설거지를 할 때도 두 동서 사이에서 푹 낮아져버리는 나 자신을 바라볼 때마다 한심해지기 일쑤였다. 키가 크면 집도 커야 하고 이불도 커야 해서 돈이 많이 든다는 변명으로 작은 나를 합리화시키기는 했지만 키도 제일 작은 사람이 문턱을 넘을 때면 걸핏하면 걸려 넘어져 무릎을 다치거나 큰 사람도 잘 부딪치지 않는 문 천정에 부딪혀 이마에 혹을 단 실수투성이 아줌마인 것만은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하기야, 살아오면서 주어진 환경을 뛰어넘으려다 높은 문턱 앞에서 넘어진 적이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타고난 머리가 나빠서 남들은 한 두 번이면 합격하는 자격증 시험에 몇 번이나 낙방 한 후에야 겨우 자격 증서를 쥘 수 있었고 이력서를 들고 세상의 문턱 앞에 섰다가 넘어져서 좌절했던 일 등 손발가락을 다 동원해도 결코 부족하지 않을 만큼 세상의 문턱은 내게 높기만 했다. 이런 나를 보고 누군가는 노력 빼면 얼굴에 기미밖에 안 남는 사람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문턱이 참 많다. 입시문턱, 취업문턱, 겨울의 문턱, 한 해의 문턱, 이 모양 저 모양의 다양한 문턱. 하지만 문턱 너머에는 기회도 많다. 실패해버렸다고 문턱을 넘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기회는 잡지 못한다. 개구리가 뛰어오르기 위해서는 잠시 무릎을 접어 웅크려 있어야 하듯 기회가 어디 있는지 잘 포착해서 접은 다리를 다시 들어 올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솝우화처럼 높은 포도나무의 포도는 신맛만 날 것이라는 여우와 같은 편견을 버리고 의자를 가져와서라도 따 먹어야 한다는 의지 또한 필요할 것이다.

새해의 문턱에 발을 들어 올린 지 열 달이 지나간다. 이곳에는 되돌아나가는 문이 없다. 수많은 문턱 앞에서 긍정적이지 못하고 높기만 하다는 편견을 가진다면 발을 들어올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실패는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는 기회와 동급인 단어이다. 문턱의 높낮이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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