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비교의 문화 속에서 최고가 되지 못한 대다수의 아이들은 스스로 패배자라는 느낌을 안고 삽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은 교실에서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첫째, 공격형.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깎아내림으로써 다른 사람과 자신의 위치를 같게 만들고자 합니다.
자신의 불행을 혼자 삼키지 않고 다른 사람도 함께 불행하게 만들려고 시도하지요.
만만한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기도 합니다.
둘째, 우울형.
자신감이 없고 의기소침해진 모습으로 생활합니다. 존재감이 없이 조용히 생활하며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습니다. 공격형 아이들이 함부로 대하는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셋째, 관심유발형.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과한 행동을 합니다. 흔히 부정적인 말이나 행동을 합니다.
부정적인 말은 긍정적인 말보다 타인의 뇌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그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아이들은 부정적인 언어, 욕설 등으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려고 하지요.
이 중 한 가지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두 세가지가 혼합되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혼합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아이들은 대개 ‘문제 학생‘으로 여겨집니다.
공격형과 관심유발형이 합해지면 대놓고 다른 학생을 괴롭히거나 교사에게 무례하게 행동합니다.
우울형과 관심유발형이 합해지면 자주 펑펑 울거나 자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공격형과 우울형이 합해지면 자해를 하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공격하는 것이지요.
저는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들 대부분이 자존감 문제로 귀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학생들에게 맞는 처방은 우선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는 학급에서 ‘직업 제도’를 운영합니다.
교실에는 다양한 직업들이 존재합니다.
학생들이 하는 일에 직업의 이름을 붙인 것뿐이지만 모든 학생에게 유용하고 재미있습니다.
학생들은 교실에서 생활하며 필요한 일을 찾아냅니다. 직업을 제안한 사람이 그 직업을 갖기도 하고 원하는 사람 중에 뽑기도 합니다.
우유 담당자, 칠판 담당자가 가장 먼저 생깁니다. 그리고 연필깎이, 분리수거 등 눈에 보이는 물건을 관리하는 직업이 하나둘 만들어집니다. 이후에는 교사가 하는 일 중 가르치는 것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이 직업으로 만들어집니다.
신용 점수가 높은 아이들은 최대 10개까지 직업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교실에 존재하는 직업은 100개가 넘지요.
직업을 수행하면 학급 화폐로 보상을 줍니다. 하루에 1별이라는 매우 작은 보상입니다. 그러나 보상의 크기에 상관 없이 아이들은 직업을 가지려고 하고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때로는 직업을 가지기 위해 100별이란 큰 돈(저희 학급에 존재하는 가상 화폐)을 쓰기도 합니다.
직업이 자리잡은 교실의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쉬는 시간에 ‘칠판’ 담당자는 칠판을 지웁니다.
‘피아니스트’는 피아노를 치고,
‘행사진행부’ 학생들은 토너먼트 게임을 진행합니다.
갈등이 생기면 ‘갈등해결사’가 출동하고, ‘카페 직원’들은 음료수를 제조합니다.
‘수업 준비’ 담당자는 칠판에 다음 수업 교재와 준비물을 적습니다.
수업 1분 전 ‘알람’ 담당자들이 “수업 준비하세요!”라고 알리면 아이들은 자리에 앉아 수업 준비 학생들이 적어 놓은 내용을 보고 교과서를 폅니다.
그리고 수업 시작 종이 울립니다.
제가 일이 있어 학교에 빠졌을 때 저희반에 오신 선생님이 깜짝 놀라셨어요.
TV를 켜야 해서 리모콘을 찾으니 ‘리모콘’ 담당 학생이 손을 들고 이렇게 말했답니다.
“선생님, TV 켜라고 저에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처음에는 공격하거나, 우울하거나, 관심을 받으려고 튀게 행동하던 아이들이 점차 학급에서 필요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덜 공격하고, 덜 우울해하고, 덜 튀게 행동합니다.
급기야 학교에 즐겁게 오기 시작합니다.
내가 학급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그렇게 좋은가 봐요.
사람은 스스로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여길 때 자존감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 가치는 공동체에 대한 기여를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은 역설적이게도 다른 사람을 위한 일에서 비롯될 수 있는 것이지요.
스스로를 사랑하면 그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여를 할 때 내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선순환입니다.
(반대로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고, 공동체를 위해 기여하지 못하면 자신을 쓸모 없게 여겨 스스로를 더욱 사랑하지 못하게 됩니다. 악순환입니다.)
저는 학생들이 학급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합니다.
기회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직업을 가질 수만 있다면 아이들은 스스로의 자존감에 끊임없이 양분을 제공할 것입니다.
자신의 소질과 끼를 발견하고 키우는 효과는 덤입니다.
저희반의 급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우리를 생각하는 어린이”
저의 교육철학이 집약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쉬운 문장입니다.
저는 이 말이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