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초등학교에서는 숙제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숙제를 싫어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숙제를 강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학생이 숙제를 안 해오면 혼낼 수라도 있었지만 요즘은 혼내는 것이 조심스러워졌거든요.
그래서 숙제가 있더라도 선택 사항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저는 매일 ‘ㄱㄴㄷ쓰기’라는 숙제를 내줍니다.
ㄱ은 감사한 일 쓰기, ㄴ은 노력한 일 쓰기, ㄷ은 독서 후 느낀 점 쓰기입니다. 각 앞 글자 자음을 따서 ‘ㄱㄴㄷ쓰기’라고 이름 붙였지요.
(감사한 일 쓰기와 노력한 일 쓰기에 대한 이야기는 10화. 부정적인 아이를 참고해 주세요.)
독서 후 느낀 점 쓰기를 매일 하도록 하는 것은 매일 독서하는 습관을 길러주고 싶어서예요. 더하여 책에 대한 감상을 적어보도록 함으로써 사고력을 길러주고 싶어서요.
이렇게 아이들을 위해 내주는 숙제이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매일 해야 하는 귀찮은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래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숙제를 잘 해와요. 숙제를 해오지 않은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숙제를 합니다.
자신의 ‘신용’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저희 반에는 신용제도가 있습니다. 그 사람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를 뜻하는 ‘신용’이 점수로 존재합니다. 학급법을 어기면 신용이 내려가지요.
학급법은 아이들이 만든 법으로, 학급회의 시간에 회의를 통해 또는 수시로 제안서에 서명을 받아 만들거나 고칩니다. 교사의 지도를 따르는 것, 폭력이나 욕설을 하지 않는 것 등이 모두 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법을 어긴다고 바로 신용을 깎는 것은 아니고, 하루 동안 반성하고 회복할 기회를 줍니다.
자신의 신용은 본인만 확인할 수 있고, 신용이 낮다고 해서 교사에게 혼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신용 만점(10점)을 유지합니다.
신용이 높으면 다음과 같은 혜택이 있습니다.
첫째, 신용이 높을수록 직업을 많이 가질 수 있습니다. 저희 교실에는 다양한 직업이 존재합니다. 가르치는 일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일이 직업으로 존재하지요. (아마 제가 없어도 교실이 굴러갈 겁니다. 직업에 대한 이야기는 7화. 자존감이 낮은 아이를 참고해 주세요.)
아이들은 학급에 꼭 필요한 일을 자신의 직업으로 삼고 싶어합니다. 학급을 위해 기여하려는 마음이 참 예쁘지요. 그래서 직업이 많은 아이들은 신용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둘째, 신용이 높을수록 특별한 직업을 가질 수 있습니다.
갈등해결사나 청소관리자 등의 직업을 가지려면 자격증이 필요하며 최저 신용 점수 조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특별한 직업의 자격 요건을 갖추기 위해 신용을 유지합니다.
셋째, 신용 만점인 아이들은 선생님의 무한한 신뢰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숙제를 해놓고 집에서 가져오지 않은 경우 보통은 숙제를 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지만, 신용 만점인 아이는 편한 마음으로 다음 날까지 가져오면 됩니다.
또 선생님이 뭐든지 믿고 맡기며 신뢰를 보여줍니다. 아이들은 그것이 참 좋은가 봅니다.
신용제도를 만든 이유는 벌을 주기 어려워진 교실에서 아이들을 규율할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도덕성이 높은 아이들은 벌이 있든 없든 선생님의 지도를 잘 따르고 숙제를 잘해옵니다. 친구들에게 상처 주는 말이나 행동도 거의 하지 않고요. 그러나 아직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학생들이 모두 도덕성이 높은 것은 아닙니다. 어느 교실에나 도덕성이 낮은 아이도 있고, 아직 유아기적인 행동에 머물러있는 아이도 있습니다. 성장하는 속도와 환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에는 자기밖에 몰랐습니다. 다른 사람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하면서, 가르침을 받으면서, 점차 사회화되고 보편적인 도덕성을 갖추어 나갑니다.
아이들의 도덕성이 낮은 것은 아이들 탓이 아닙니다. 아직 가정과 학교에서 충분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옳은 행동이고 무엇이 옳지 않은 행동인지를 익혀 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아이들을 규율할 수 있는 ‘수단’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는 그 수단이 ‘혼내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나쁜 행동을 하면 혼내며 가르쳤죠. 혼내서라도 가르치는 것이 맞았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될 테니까요.
그러나 혼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혼내는 것의 한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다루려고 합니다.)
저는 신용제도를 통해 아이들을 규율합니다. 혼내지 않고 아이들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도록 작은 장치를 해놓은 것이지요. 지금까지 저의 글을 읽어오신 분들이라면 이런 방법이 의아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으로, 믿음으로, 존중으로 아이들을 대하며 변화시키는 이미지였을 테니까요. 물론 그것도 맞습니다. 사랑, 믿음, 존중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지만 모든 학생이 저의 품 안에 들어오는 데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동안 수업을 방해하고 다른 친구에게 피해를 주는 학생이 있다면 저는 이를 막고 선량한 학생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또 아이들이 저의 품에 들어온다 하더라도 때로는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사회에는 법이 존재합니다. 법을 어기면 벌금을 내거나 감옥에 갑니다. 법이 없다면 어떤 세상이 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요.
사회화가 잘 된 사람은 법을 잘 지키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사회화를 담당하는 기관이 바로 학교입니다.
제가 운영하는 교실에는 아이들이 만든 학급법이 있고, 그것을 지키지 않았을 때 아이들을 규율할 신용제도가 있습니다. 준법정신과 태도를 연습할 수 있는 장치들이지요.
아이들은 신용제도 속에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응당한 책임과 불이익이 따른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저는 신용제도를 무기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말을 듣지 않는 아이에게 복수하는 마음으로 신용 감점을 하면 아이들은 성장하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
아이들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제도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이 있으면 신용 감점이 될 수 있지만, 진심으로 반성하고 학급을 위해 노력하면 감점이 되지 않습니다.
누군가 떠들면 저는
“어머나, 선생님 도와주고 싶었구나?” 라고 친절하게 말합니다.
그러면 떠든 아이가 쉬는 시간에 달려와
“선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라고 씩씩하게 말해요. 그리고 필요한 일을 도와줍니다.
학급에 피해를 주었지만, 교실을 위한 일을 해주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도 그 친구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문제 행동의 정도와 빈도가 점점 줄어듭니다.
덕분에 저는 아이들에게 마음껏 웃고 마음껏 친절하게 대합니다.
교실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 위에서 아이들과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관계를 쌓아 나갑니다. 제가 괴물이 되거나 아이들이 상처받을 필요 없이 모두가 일 년 동안 성장해 나갑니다.
하루는 아이들에게 물었어요.
“숙제 안 한 친구들, 쉬는 시간에 숙제하라고 잔소리하는 거 듣기 싫지? 하지 말까?”
그랬더니 아이들이 입을 모아 말했어요.
“잔소리 해주세요! 그래야 까먹지 않고 숙제를 하죠. 그리고 선생님 말은 잔소리 아니고 꽃소리예요! 저희를 위해서 말씀하시는 거잖아요.”
잔소리를 해달라는 아이들이 참 귀엽지요.
아이들에게 저는 혼내는 사람이 아니라 알려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더 마음 놓고 잔소리 아니 꽃소리를 합니다.
저는 아이들을 믿고 아이들은 저를 믿습니다.
신용을 유지하는 아이들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