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러는 교육의 목적을 자립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자립은 단순히 경제적 독립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을 나와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는 일까지 자립으로 보았죠.
사람은 처음 태어났을 때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모의 사랑과 도움으로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지요. 그리고 어른이 되어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을 새로운 가족 또는 타인이나 사회에 전함으로써 비로소 자립이 완성됩니다.
저는 미움받을 용기2에서 ‘자립’에 관한 부분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교육과 자녀양육에 적용할 바가 많았죠. 놀랍게도 자립에 대한 아이디어는 친절한 훈육의 철학과 비슷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친절한 훈육을 이미 오래전부터 실천해 온 상태에서 미움받을 용기를 읽게 되었지만, 마치 아들러의 철학을 바탕으로 친절한 훈육을 생각해 냈다고 여겨질 정도로 통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그래서 좋았습니다. 제가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러는 ‘자립’이라는 용어를 썼지만 저는 이것을 두 갈래로 나누어 표현하고자 합니다. ‘성장’과 ‘사랑’.
‘사랑’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 타인을 사랑하는 것, 공동체를 사랑하는 것 모두를 포함합니다.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자존감을 높이고, 타인을 사랑함으로써 행복한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사랑함으로써 사회에 공헌을 하는 사람. 우리가 길러내야 할 사람은 이런 사람입니다. 학교교육도 자녀양육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사랑’보다는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습니다.
공부를 잘하도록, 자기 관리를 잘하도록 하는 목표에 치중하여 ‘사랑’은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감정조절을 못하여 소리치고 화내는 아이가 있을 때 우리가 가르쳐야 할 내용은 명확합니다.
자신의 기분만 중요하게 여기지 말 것.
공동체의 상황과 분위기를 생각하여 행동할 것.
감정을 조절하는 기술을 익힐 것.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위의 내용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친절하게 그리고 반복하여.
사람은 원래 아무것도 모른 채로 태어나거든요. 한 번 들었다고 해서 바로 익힐 수 있는 건 아니라서요. 여러 번 연습해야 합니다. 그저 필요한 연습량이 사람마다 다를 뿐입니다.
아기가 걸음마를 떼는 과정을 생각해 보세요.
아기는 일어서는 것부터, 무언가를 짚고 한 걸음 두 걸음 연습하는 모든 과정에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패합니다. 그때마다 부모는 어떻게 행동하나요? 아이가 넘어졌다고 질책하나요? 한숨을 쉬나요?
사랑한다는 눈빛으로, 입은 웃으며, 손은 박수치고 마음은 응원합니다.
그렇게 아이는 일어서서 걷고 뛰며 세상에 한 발씩 내딛습니다.
학생도 다르지 않습니다. 배울 것이 많으니 학생이지요. 잘 모른다면 가르쳐주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이들이 한 번 알려주면 바로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엄청난 기대와 목표가 우리를 화나게 하고, 아이를 혼내는 어른이 되게 합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지시를 듣지 않고 같은 잘못을 반복해서 화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순간 화가 많이 나서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아이에게 되려 물었습니다.
“선생님이 좋은 말로 여러 번 했는데 네가 듣지 않아서 선생님은 화가 난다. 선생님이 어떻게 해야 네가 행동을 고칠까? 네가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겠니?”
아이는 진지하게 고민하더니 대답했습니다.
“하지 말라고 한 번 더 좋게 이야기할 것 같아요.”
순간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다른 방법이 필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지금 필요한 일은 아이에게 한 번 더 알려주고 연습할 기회를 주는 것.
아이의 대답은 아이의 바람이기도 했습니다. 아마 모든 아이들의 바람일 겁니다.
잘못해도, 한 번 더 좋게 이야기해 주길.
혼내지 않길.
사랑해 주길.
친절한 훈육이 어려워 보인다면, 한 가지만 기억해 보세요.
“우리는 사랑도 가르쳐야 합니다.”
걸음마를 연습하는 아이를 볼 때처럼,
넘어지면 일으켜 주고 머리도 쓸어 주세요.
모든 게 커가는 과정인 걸요.
아이는 모든 경험에서 세상을 배우고 있답니다.
<덧붙이는 말>
저도 모든 순간 친절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노력할 뿐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들은 친절한 저에게 적응이 되어,
제가 굳은 얼굴로 한숨만 쉬어도 모두 조용해집니다. 그때부터 내뱉는 저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아이들 마음속 깊이 들어가는 것이 보입니다.
작은 혼냄에도 진지해지는 아이들을 보면 화를 내고 싶어도 화를 덜 내게 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저는 곧 평정을 찾고 아이들은 곧 웃음을 찾습니다.
때로는 친절함이 무기가 됩니다.
친절하지 않은 잠시의 순간이
아이들 머릿속의 비상경고등을 켜게 되거든요.
친절한 훈육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친절한 훈육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노력하고 익숙해지니 지금은 혼내는 것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아이들이 정말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저를 보고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