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당대예술30년(CHINESE CONTEMPORARY ART)
1989년 2월 '중국현대예술전' 이후, 맹목적으로 진행되던 중국의 전위예술(아방가르드)사조는 후퇴기에 접어들게된다.
그 이유로는 크게 3가지를 들 수있다.
첫번째는 그들이 생각하는 전위예술은 전통이나 내재적논리에 근거해차근차근 발전한 사상이아니었고, 사상해방운동의 산물일뿐이었다. '극좌'운동에 대한 반발로 일어나 예술의 다원화과정에 이르자 목표를 상실하게된것이다.
두번째로는 전위예술에 참여한 많은 중국의 젊은 예술가들은, 작품의 창작과정에서 그들이 채택한 서방현대미술양식이서양의 문화이자 역사의 산물임을 뼈저리게 체감하게된다.
아시아예술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잊은채
서양의 현대예술을 곧이곧대로 따라하는것이
의미없음을 깨닫기 시작하는것이다.
세번째로는 '극좌'운동에 무조건적인
반항의 결과, 사회현실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진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는
중국인이지만 중국의 것을 그리지않는 결과에
이르게 된것이다.
1-2년동안의 반성과 비판의 시간을
거친 중국의 아방가르드미술은
다시금 새롭게 탈바꿈하게된다.
1992년 개혁개방에 맞추어 새 발걸음을 내딛게된것이다.
1992년이후의 중국아방가르드미술경향은
두가지로 나누어진다.
첫번째는 '사회학'에 근거한 예술창작이다.
이는 이전의 사회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진 예술창작과는 완전히 상반된 것으로, 이 시기의 작가들은 당대문화중적절한 문제를 찾아내어 작품속에 담기시작한다. 인간의 현실생존환경과 상태에대해 언급하기 시작하는것이다.
대표적인 장르로는 당시 지배적이었던, 유화, 설치예술, 행위예술, 영상예술을 들수있다.
두번째 경향으로는
중국적 문화를 전통으로 기반삼아 그위에
현대예술적인 경향을 더하여 중국식 현대예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이는 80년대이후 문학화의 경향과 관련이 깊다.대표적인 장르는 추상예술, 그중에는 추상수묵화를 들수있겠다.
90년대에 중국미술계 출범한
여러 장르중에서도 '유화'는 단연 으뜸이었다.
작품의 성숙도나 다른작가들에게 주는 영향력 면에서 특히 그러했다. 당대 유화작품 덕분에 중국 미술계 많은작가들이 비로소 세계적인 주요 전시회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말도 과언이아니다.
8.5 미술운동시기의 실험성회화나 90년대 중국 당대유화 스타일은 점차 전체적으로 형식적아방가르드미술을 추구하고 자기표현을 주장하던 기존의 경향으로부터 작별을 고하게된다. 대신 '인간자신', '생존환경'
,'예술경험과 일상경험의 합일', '대중화','사회의식' 등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게된다.
서사성과 구체성을 특징으로하고, '사람(人)'을 주제로하는 캔버스미술이 다시금 주류로 자리잡게 된 가장 큰 이유는엄격한 아카데믹 미술교육을 받은 유화작가들이 90년대 이후
'전통' 현실주의를 마음껏 뽐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할수있겠다.
이 시기 가장 눈에띄는 예술사조들을 중심으로 작품들을 살펴보고자한다.
포피(泼皮)란 펑크족 또는 건달을 의미하는 중국어이다. 이것은 동시에 농담하는 사람, 버릇없는 행동,모든 것을 간파하고 어떤 것에도 현혹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당시 유행했던 조소, 가벼운어투, 세상을 비웃는 문체로 정통, 허위, 신상 등에 반대하는 경향을 띈 피자문학(痞子文学)의 영향을 많이 받게되었다.
20세기 90년대초에 유행했던 이 예술양식은 독특한 문화태도와, 예술언어양식을 취했고, 다루는 재제나 내용 면에서 확실히 중국스러운 아이덴티티를 띠고있었다. 그래서 국외 비평가들로 부터 많은 관심을 얻게된다.
대표작가들로는 우리가 익히아는 팡리쥔, 유민준, 류웨이, 양소빈을 들수있다.
포피예술의 대표작가 유에민준의 1995년 작품이다. '바보같이웃는사람'은 유에민준 작품의 대표형상으로
유화작품 뿐만아니라 실물크기의 조각상으로도 이미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이미지이다. 작가는 '모식화', '형상화' 방식을
통해 마치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듯이 같은 이미지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작가의 실제모습을 대변하는 이 인물들은
특유의 실없이 크게 웃는 하지만 즐거움이라곤 느껴지지않는 허무한 미소를 날리고있다. 이 작품은 낭만주의 작가 들라크루아의 유명한 그림 <민중을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패러디한것이다. 두 작품을 비교해보면, 프랑스혁명 당시를 묘사한 웅장하고 성스러운 에너지가 느껴지는 전작품에 반해 유에민준의 작품에선 오합지졸들이 중구난방으로 모여있는듯한 느낌만 들 뿐이다. 마치 상업광고의 한장면을 보는 듯한 화면배치 방식을 통해 작가는 사회를 조롱하고 비웃는 것만 같다.
유에민준은 인위적인 웃음을 짓는 현대적 병마용들을 배치시킴으로써, 단조롭고 공허하며, 천박하며, 무료하지만 아름답기도하고 저속한 문화를 표현하려하였고, 중국인들의 인성이 점차 무감각해지고, 정신적으로도 둔해지는 점을 풍자하려고 하였다.
20세기 6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된 예술운동으로, 현대사회의 사용되고 있는
일상용품, 상업적인 목적을 띈 생산품으로 부터
문화부호를 차용하고, 그것을 한단계 더나아가 예술로 까지 승화시키는 예술사조를 일컫는다.
팝아트의 출현은 이제까지 이어져오던 고아한 예술의 경계와 키치예술사이의 경계를 허물어버렸고, 예술창작에 있어 '질(质)'에 대한 관점을 바꾸어 놓았다.
1985년 11월 북경에서 있었던
팝아트의 거장 라우셴버그의 전시회를 시작으로
중국에서도 본격적으로 팝아트 미술이 전개되었다. 구문답, 오산전 같은 작가들을
필두로 기존의 미국에서 전개되던 팝아트와는 다르게 역사, 정치성을 띤 부호들을 채택해서
그것들을 신격화하는것에대해 조롱하고 야유를 보내는 등 현실참여적인 태도를 보인다.
작가 왕광의는 '북방예술단체'소속의 청년예술작가로 인문정신을 중시하는 '이성회화'를 강조해왔다.
90년대 후기에 이르러 정치,문화,경제 방면에서 신문화적 환경이 조성되기 시작했고,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새로운 인문정신적 사유가 필요하게 되었다. 기존의 인문정신은 예술가들의 현실참여적태도 나 생활주동적태도가
현저히 부족했기때문에 좀더 적극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다. 1989년 중국현대예술전시회에서 작가는 이 돌파구를 찾아낸
획기적인 작품을 전시회에 출품한다. 이 작품은 문혁,정치색이 짙게 나타나는 중국공산주의 사상의 대표적인 공농병사들이 대비판을 하는장면과
코카콜라라는 철저히 상업적인 요소들을 병치한 중국식 팝아트 스타일이다. 미국식 팝아트와는 달리 중국팝아트는 이러한 역사적 정치적요소가 늘 등장하며 이를 통해 관중들로부터 기존 실패한역사와 정치에대한 반성과 회고를 이끌어낸다.
작품에는 회화성이 짙지않고, 대면적으로 대상들을 펼쳐놓은듯한 느낌으로 시각적인 충격이 상당한 작품이다.
아름답다는 뜻의 염(艳) 자와 속되다(俗) 라는
두글자가 뜻하는 것처럼 세속적인 하급문화이지만 아름다운 예술을 뜻한다. 1996년에서 1999년사이에 성행했으며, 미국 팝아트의 영향을 받았으나, 미국,중국팝아트와는 다른 양상을 띤다.
그 특징으로는 상업적이거나, 정치, 역사적인 부호들을 채택하는 것이아니라, 민중예술, 대중들로부터 그 예술적 모티프를 찾아냈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예쁘면서도 통속적인 것을 통해 현실생활중에 마주하는 아주작고 사소한 요소들을 풍자하고 꼬집는 하류의 생활경험과 시각경험을 다룬 예술사조라고 할 수 있겠다.
<낭만여정>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작가의 <결혼사진>시리즈 연작중 하나이다.
작가는 한 쌍의 부부를 각기 다른시대를 대표하는 부자들의 복장을 입혀 놓았다.
사진을 찍는 장면속 모델들은 상당히 부자연스럽다. 어색한 포즈, 지나치게 빨갛고 하얀 얼굴화장,
바보같은 표정을 한 쇼윈도우 부부같은 인물들 한쌍을 통해 작가는 거짓된 사랑, 아름답지만 저속한 그래서 가소롭게 여겨지는 자태를 포착하려했다. 작품에는 반어적 풍자성이 짙게 베어있고, 민간예술의 형식이 강하게 남아있다.
앞에서 대표 미술사조 작품들
외에 다른 사조의 몇 가지 눈에 띠는 그림들을
더 살펴보자면 아래와 같다.
작가는 자기자신을 작품의 모델로 설정해 '확대' 와 '과장'이라는 기법을 통해
화면을 장악해나간다. 작품을 자세히 설명해보자면 개인적인공간에서 한 남자가
마스터베이션을 준비하고 있다. 조심스럽고도 은밀한 과정이지만, 누군가에의해 갑작스럽게
발각되고 만다. 이 장면은 노란색으로
비추어지는 손전등 등에의해 강조되고, 작품속 등장인물의 표정과 색채대비를 통해 강조된다.
이런 충격적이고도 감각적인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작가는 개인의 존엄과 사생활이 침해받고있는 현실상황을
지적하려 하였다. 보다 '현실적인 사유'를 통해 예술을 전개했던 화파들을 '심리현실주의'화파라고 칭하며
이 작가는 그중에서도 대표적이다.
여기 또한명의 중국당대예술을 대표하는 작가 장샤오강의 작품이있다.
화가는 90년대 중기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창작방식을 고수해오고있다.
그의 작품에는 '오래된 사진'이라는 확실한 표현방식이 있다. 이는 독일 예술가 '리스트'의
영향을 어느정도 받은것으로 보인다. 장샤오강이 성공적인 작가가된 가장 큰 이유는
창작에 있어서 '성공적 변환'를 이루어냈다는것이다. 첫번째는 중국 본토의 역사성이 잘드러나는
굉장히 클래식한 느낌의 사진소재를 채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의도적으로 사진 원작 스토리를 무시하고 자신만 보편화된 인물들을 그 속에 투입 시킨다.
외꺼풀, 일직선의 콧대, 날카로운V자형 턱선, 흐리멍텅한 눈빛, 개성없는 표정, 굳게 다문입술,
동일한 형식에 같은 옷을 입은 인물들은 사람이라기보단 로보트같이 생명의 기운이라곤 찾아볼수없다.
두번째로 작가는 사진으로부터 취한 이미지를 자신만의 고유한기법으로 완성시켜내었다.
목탄 혹은 흑연을 문지른 듯한 마찰기법을 탁월하게 살려 우울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해낸것이다.
작가는 사진 속 얼굴에서 극좌시기에 사적인 은밀함과 집단주의 세례를 받은 세대들의 공통된 표준화를 발견했으며,
인성의 다원화의 파괴를 야기한 '극좌'사상을 꼬집어 풍자하고자했고, 중국인들의 역사와 마음을 그려내고자하였다.
불상(佛像)을 이루는 여러가지 조건중에 한가지는 바로 손동작 수인(手印)이다.
바로 이 작품에는 정확한 손동작은 아니지만 확실히 불교적 제스쳐라는 것을 암시하는 거대한
손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손위에는 당시 최첨단 신식 핸드폰이었던 '모토로라' 모델이 놓여있다.
전단지 광고의 한장면 같은 이 그림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간결하면서도 강력하다.
바로 핸드폰으로 대변되는 물질만능주의와 또 그것이 초록색의 기기괴괴한 손위에서 얼마나
부조화 스럽게 놓여있는가를 살펴보란 것이다. 더불어 수인(手印)을 취한 손은 '종교'를 대표하며
현대중국인들이 이런 지경에 처한 원인 중에 가장큰 하나는 바로 신앙심의 부족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