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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우 Nov 12. 2016

막을수없는 청년예술대류(1985-1989)

중국당대예술30년(CHINESE CONTEMPORARY ART)







1980년대에 이르게되면 중국은 사상해방운동과 개혁개방의 진행으로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8,5신조'라는 기치아래

이전에 있었 '극좌'예술과 '문혁'전통으로 부터 벗어나자는 움직임이 나타나기시작했다.

젊은 청년예술가들을 주축으로 하는 이런 운동은 예술창작은 정치의식, 상관들의 의지나, 도덕규범의완성,

사회이론으로 부터 분리되어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중국의 경제, 정치, 사회, 문화가 다른 서방국가들에 비해 낙후된 이유는

전통문화에대한 가치관으로 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했고, 이를 계기로 그들은

'전통문화'를 반대하고 서방현대예술로부터 모티프와 아이디어를 차용하기로한다.


孟禄丁 张群 < 在新时代——亚当夏娃的启示>1985年

새로운 시대--아담과 이브의 계시라는

제목의 유화작품이다.

 모두가 잘아는 <성경>으로부터 소재를 채택했다.

 소재선택과 배치, 작품의 구도,  모든 것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웅장하며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해 낸 작품이다.



张克端 <冬季草原> 1985年

1985년 절강미술학원 졸업작품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으로  작가는 기존의  스토리성을 강조하는 습관성에 대한 반발을 계기로 창작을 결심했다고한다.  말 과 사람의 동작만을 통해

한겨울 매서운 추위를 표현하고싶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가로로 곧게 뻗은 직선을 사용함으로써, 간결하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을자아내고있다.






1985년 이후에는 대규모 미술단체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시기의 젊은청년예술가들은

 '전진중의중국청년미술전시회'라는 기치아래

자발적으로  단체를 만들기시작했다.

불완전한 통계지만 전국 20개 성, 시, 자치구에

청년예술단체만 백개이상이 생겨났다고한다.


이들은 정부주최의 기존 전시시스템에

불만이 많았다. 상당수의 현대적이고

예술적인 작품들이 당의 기준에 합당하지

않다고 판단되어 거부되었기에 그들은 힘없는

소수가아니라 같은뜻을 가진 단체로서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더영향력이 있다고 판단되어 단체를 결성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단체들이 서로 각기다른

스타일을 지녔지만 크게 3가지틀안에서

공통점을 찾아볼수있다.


 그 첫번째는

철학화의 경향이다.

이들은 경직화된 의식을 초월하려했다.

그 방법으로는 동서양 저명한 철학자들로 부터

답을 구하려했고,

니체, 플라톤,비트겐슈타인, 노자,장자의

사상을 열심히 탐구했다.


도식이나 관념에있어서

서양의 초현실주의 영향을 많이받았다.

하지만, 사상에 너무 치우친 나머지

지나치게 현학적이 되어버리는 경향이 나타나게되었다.


余友涵<圆系列>1986年 水墨画

여우한의 수묵화 작품이다.

그는 '원(圆)'이야말로 고도로 정감과 이념을 개괄할수있는 형태라고 믿었고, 작품속에 마음껏 표현해내었다. '원시리즈'라는 이 작품에서는 인간과 우주간의 관계에 대한 심도있는 사고를 표현해 내고자 했다.  



두번째로는 '생명류의경향'을 들수가 있다.

직관, 본체의지, 잠재의식, 내재생명상태,

인간과 자연의 친밀한관계를 표현하고자했다.


마지막 세번째는 '형식화의경향'이다.

문혁회화에서 정해진 '제재'한정으로부터 벗어나고자하였고, 오관중이 쓴 글 '형식미독립성의 강조'를 계승하여,

"예술언어가 곧 예술본체"라는 전적으로 형식미에

초점을 맞춘 창작활동이 진행되었다.

또한 이러한 예술활동으로서 행위예술과 설치예술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丁方<走出城堡>1985年

정방의  <성보루를걸어나가며>라는 작품이다.

작가는 성(城)시리즈의 작품을 그렸으며, 이그림은 그중하나이다. 고성과 황토평원을 제재로 택하여 옛 중국의 위대함과 현재의 낙후된 모습을 극적으로 대비시켰다. 역사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상실감과 공허함이 느껴지고, 이 작품은 기존의 다른 연작들보다 더 황금빛이  많이 가미되어 종교적 색채가 강하게 베어있다.


耿建翌<第二状态>1987年

이 작품은 얼굴의 근육변화와

추상적배경의 결합시켰다.

차가운 단색을 통해 작품전체에 통일감과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공간과 형식에있어서

단순화를 이루내었다.   




이 장에서는 행위예술과

설치예술에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한다.


당시 주류미술사조에대한 반발로 출현하게된

행위,설치예술은 후기 현대미술에 속한다고 할수있겠다.


어느정도는 현대주의미술로부터 벗어났지만, '참여성','일상성','사건성(event)'을 띄고 있다는 점에서 보자면 여전히 예술사회의 가장기본적인

민주원칙을 잘 지켜내고있다고 보인다.


중국에서의 행위,설치예술의 등장은

너무나 빠르고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는 크게 내부원인과 외부로부터의

영향을 들 수있다.


내부적으로는 당시 전통과 현존하는 미술에

굉장한 불만을 품은 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캔버스위에서만 이루어지는 '회화'를 대표로하는 기존 주류 미술을 재미가 없고,수준이 떨어지는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좀더 야생적인 예술관과는 맞지 않다고 여긴것이다.


외부적 요인으로는

1985년 11월 북경중국미술관주관으로열린

팝아트의 대가 로버트 라우셴버그(Robert Rauschenberg) 의 전시를 말할수있겠다.

로버트의 작품은 주제, 소재, 모든면에서 기존의 미술상식이 지배하고있던 고질적인 틀을 깨버렸기때문에, 소극적이고 순종적인 예술을 해왔던 중국젊은예술가들에게 다가온 충격은 이로 말할수가없었다. 이 후 '몸','일상용품','쓰레기'마저도 예술의 소재가 되고 주제가 될수있음을 인식하기시작했던것이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설치,행위예술의

역사는 너무 짧았고, 올바른 선례가 없었다.

또 작가들은 개성에만 중점을 맞추었고

제일 중요한 대중들과의 '소통'이 생략되었다.

명확한 목적이나 표제없이, 그저

'반항','반발'이라는 의미에만 치우친

작품들이 많았다.



耿建翌<自来水厂> 1986年

작가는 기존의 회화작품이외에도 설치,행위미술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이작품에서는 관중과 작품사이의 '교류'에

주목을 하려 하였다. 관중 중에 한명이 설치된

작품 속 의자에 앉는다. 그럼 원래는 그림이 걸려야할곳에 구멍을 뚫어 만들어진 창을 통해 또 다른 관중들이 작품에 참여하게 되고, 구멍을 통해 의자에 앉은 1인을 관찰한다. 작가는 주목하고 주목받는  활동을 통해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려하였다.



徐冰<析世鉴>1988年

문자, 서예적 요소를 사용하여 제작된

이 작품속에 글씨들은 사실 아무런 의미가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엄청난 의미를 지니고있을 것만 같은 빼곡빼곡한 글자들은 그저 나열된 도상들에 불과하다. 하지만  거대한  규모의 설치작품은 관중들에게 자연스럽게 작품을 해석하도록 만들고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얻지못하게하여 좌절감을 가져다준다. 이 작품은 중국식 구조주의와 구조해체주의라는 아이러니의 결합체이다.



행위, 설치예술의 최종적인 목적은

사실 그 어떤 행위나 재료 그 자체 있는것이아니라,

마치 불교의 선종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인간이 재료와 행위에 집착하지말고, 모두 버리고

그것들이 가져다주는 의미를 곱씹으며

'관념' 상에서 마음을 밝히고 들여다

 보아야한다는 것이다.





개혁개방이 이루어지면서

서양 현대미술사조의 급류는

중국 전통수묵화에도 많은 영향을미쳤다.


비평가 贾方舟는

" 현재 서양 현대예술의 가장직접적인

공격을 받고 변화한 것은 중국의 유화입니다.

그래서 유화가 지금 가장 주류화풍으로 선전하고있지요. 그에 반해 중국화는

관념이 낡았고, 예술적언어면에서도 비교적

맛이 떨어지는 일반적인 상태에 머물러있을뿐입니다. " 라는 글을 씀으로써,

중국 수묵화의 암울한 현실을 지적해냈다.


중국 수묵화가 이러한 사태에 이른데에는

크게 두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다.


첫번째로는 전통수묵화 자체가 가지고있는

고유의 형식표현, 도상, 가치 체계는 너무나

견고해서 그 중 어느 하나라도 바꾸려고한다면

자칫 수묵화 본연의 의미를 잃게된다.


두번째로는

유화의 다양한 기법과 수묵화재료사이에

생기는 모순을 들 수있다. 수묵재료자체가 가지고 있는 개성이 워낙 뚜렷해서 다양한 기법을 자유롭게 사용할수 있는 유화의 특질과는 너무나 달랐다.그래서 중국 수묵작가들은 유화작가들처럼

서양 현대미술을 그대로 차용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런 제한적인 틀속에서도

중국의 젊은 수묵화작가들은 자신들 고유의

경험과 독특한 방식으로 구성법, 작색법, 조형법을 구축해나갔다.



李津<西藏组画> 1985年


작가 이진은 수묵으로  인간과 동물을 화면에

가득차게 그려내었다. 이 그림을 통해 작가는 인간의 동물적인면모, 동물의 인성(人性)을 드러내려하였고, 궁극적으로 순수한 생명

그자체에 주목을 하려했다. 표현상에서 살펴보자면 화면구성이  간결하고, 형상들의 형태는 거칠고 야생적이다.  전체적으로 이작품이 가져다주는 느낌은 원시의 생명이 지닌 신비로움이라고 정리해낼수있겠다.



王川<水墨人物>1988年

작가 왕천은 사실 상흔미술시기에 <再见吧,小路>라는 대표적인 유화작품을 남긴 화가이다. 왕천은 1980년대에 중국의 남부 홍콩 옆에 위치한 심천에서 새로운 남방예술사조를 만들겠다는 운동에 동참했고, 수묵화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기 시작한다. 작가는 전통수묵화의 '필'이 가진 풍부성,마음가는대로 붓이 따라움직이는 특성이 너무 마음에들었고, 서방추상주의 양식을 전통수묵화방식으로 표현해내기 시작했다.

이 그림에대해서 설명하자면, 오로지 묵의 농담(浓淡) 건습(干湿)조절을 통해 형상을 만들어 나갔다. 화면에는 진솔한 표현이 가득하다.

크게 변형된 인물, 혼돈의 우주라고도 해석 될수있지만  여전히

 무궁무진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고있다.


沉勤<师徒对话>1985年

8.5신사조운동시기 대표적인 수묵작가였던,

침근은 초현실주의 관념과 중국전통 공필화의 조합을 꿈꾸었다. 이 작품에서는 '돈오(禅悟)' 불교 교의에 대한 갑작스러운 깨달음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스승과 대화하는 제자는 이목구비가 아예 없는 사람이라고 할수없는 형태를 지니고 있다. 그들이 앉아서 대화하는 공간 또한 광활하고 공허하기만 하다. 원근법이나 빛처리 또한 차가운 느낌을 자아내는 회색빛이 지배적이다. 작가는 전체적으로 초현실주의적인 요소들을 수묵화작품 곳곳에 잘 녹여내었다.


안타깝게도, 일부 작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수묵화가들은 90년대에 이르기까지

비주류 예술장르의 작가로서 살아남아야할길을 끊임없이모색해야만하는 고난의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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