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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우 Oct 04. 2017

그 마을에 불어온 봄바람

영화18<소성지춘(小城之春)>







봄바람은 슬며시 아주 미미하지만 확실하게 그들에게 불어왔다.
궁벽한 시골 마을 이라면 아주 작은 일이라도 크게 부풀려지기 마련이다.
시골마을 만큼 소문이 무성한 곳이 없고, 아주 사소한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곳도 없다.  그네들이 살고있던 그 마을에 아주 살살 불어온 봄바람은 지구 반대편에 일어난 태풍처럼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즈쳔(志忱)이 그 큰 파동의 시작이었다.


항일 전쟁이 끝 난 이후, 남쪽의 한 시골마을에서 한부부와 여동생이 살고 있었다. 남편 리이엔은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아 심장병이 심해져 갈수록 마음이 강팍해져갔고 짜증이 심해졌다. 아내 '위원'은 그런 남편을 병수발하는데 지쳐가고 있었고 결혼생활에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7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남편의 여동생 씨우가 아가씨 태를갖출 무렵 남편의 오래된 친구가 잠시 이 곳에 머무를 것이라는 소식을 접한다.

남편의 친구는 다름아닌 동향이자 한때 결혼의 문턱까지 갔던 '즈천',
결혼대신 학업을 선택해, 지금은 의사가 되어 돌아왔다.






위원은 엄청 불편하지만 또 한편으론 너무나 그리웠던 그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겠다.

그가 아니기를 바랬다.
한편으론 그 사람이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 이 일 거라는 아주 작은 단서들은 점점 확고한 사실로
바뀌어 갔고, 그는 내 눈 앞에 나타났다. 나는 그 남자를 잊어본 적이없다.
그 사람과 함께 떠나고 싶다. 하지만 또 떠날수없다.
내 마음속엔 늘 '모순'이 자리했다.











그녀가 너무 그리웠다.
그녀 어머니의 반대만 아니었더라면, 지금 그녀의 옆자리는 나였을텐데, 친구 리이엔의 여자가 되었다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너무나 보고싶고 안고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위원은 남편이 있는 유부녀다.

잊지말자. ....
친구를 보러 오기전 즈쳔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친한 친구와 한때 사랑했던, 아니면 어쩌면 지금까지도 사랑하고있는 그 여자가 결혼을 해서 살고 있다니, 쉬운 발걸음은 분명히 아니었으리라, 그치만 또 너무나 설레는 발걸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모호한 마음을 정리하지못한채, 그녀 앞에 마주섰다.  












아내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이 아무것도 없는 시골바닥에, 낡아서 무너저가는 집을 돌보고,
여자가 아닌 가정부로서 살아가게 만든 죄, 모두 내 탓이다.
아픈 몸에 더해가는 짜증,  내 몸뚱이 하나 관리못하는
나약함에 갈수록 움츠려드는 어깨,  찌질한 인생을 사는 내 앞에
잘생기고 번듯한 건강한 친구 즈쳔이 왔다.
그의 방문에 집안 곳곳엔 활기가 돋기 시작한다. 그를 사모하는 여동생 씨우의 콧노래는 끊이질않고, 그를 바라보는 아내 위원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핀다. 그런 아내를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아니라 건강한 그를 만났더라면, 지금 그녀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기회를 주어야겠다.  숨겨두었던 수면제를
꺼내 한입에 털어넣는다.







뒤늦게 가정부에게 발견된 리이엔, 죽어가는 남편을 보자 아무감정이 없다고 생각했던, 사랑하는 즈쳔의 손을 잡고 맘편히 이 지긋지긋한 곳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아내 위원은 비로소 자기 마음속의 모순의 껍질을 벗겨내었다. 즈쳔의 응급처방아래 목숨을 건진 리이엔, 친구의 자살시도를 목격한 즈쳔은 이 곳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봄바람은 여름의 태풍이나 겨울의 살에는 칼바람처럼 강력하진 않지만,
감정을 움직이는 확실한 무언가가있다.
살랑살랑 불어와 싱숭생숭한 마음을 살살 간지른달까.
없던 마음도 생겨나고, 미미했던 마음도 부풀려지는 마법이 일어난다.
그네들의 마음도 이러했으리라, 살며시 불어온 봄바람에 잠깐 들썩였다.
미미하다곤 했지만, 감정에는 확실한 변화가 나타났다. 위원의 결혼생활에 대한 답답함은  책임감과 확신으로 바뀌었고, 리이엔의 자기에 대한 원망은 아내에 대한 다소 거친모양의 사랑으로 드러났다. 즈쳔의 위원에대한 사랑은 미련인것을 알게되었다.   
이 모든게 봄바람이 부린 마법이 아닐까.
아주 작은 시골마을에 봄이 잠깐 찾아왔었다.
해마다 오는 봄이 지만 그해는 아주 특별한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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