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솔사 사람들과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여기서 풀어내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진 생각들이 오해일 때도, 착각일 때도, 진실일 때도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결론은 그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그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 힘들었고 벅찼다는 것이다.
사실 이곳에서의 근무는 나에게 많은 것들을 배우게 했다.
첫째, 내 생각보다 나와 맞지 않는 일이 많다는 것
둘째, 내가 아직 공기업에 미련이 많다는 것
셋째, 중소기업에 다닌다는 것은 단순히 급여가 적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나는 내가 무던하고 꽤나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착각’을 하고 살아왔다. 중고등학교 때까지는 내가 원하는, 성향이 비슷한 친구들 만을 만나왔다는 것도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깨달았다. 정말 다양한 성향의, 소속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각자 인생의 루트가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때때로는 이해의 범주 안에 있지 않은 사람들도 만난다.) 이 사람이 나의 ‘친구’로서 어떤지에 대한 판단기준은 버린 지 오래였고, 같이 일하기 괜찮은, 무난한 직장동료서 자격요건을 갖춘 사람들인지 살피게 되었다. 콘솔사에서는 또 새로운 한 가지를 배웠는데, 업무 자체도 그렇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행정 업무라고 해도 정말 다양한 종류의 업무가 있고, 그 진행 방식에 따라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되기도, 할 수 없는 일이 되기도 했다. 콘솔사는 혼자서 메일에 답장하고 에이전트와 주고받는 것이 주된 일이기는 했으나, 윗 직급의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푸시를 받고, 새로운 부킹 건을 맡게 되는 일이 하루에도 수십 번 일어났다. 슬로 스타터인 나는 좀 기다려주고 혼자 해볼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시간을 충분히 갖기 힘든 업무 프로세스에 계속해서 내몰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아, 세상에는 이렇게까지 나와 맞지 않는 일도 존재하는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두 번째로 공기업에 대한 미련은,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느꼈다. 사장님과 신입사원들이 함께 점심을 먹는 자리가 있었는데, 사장님은 내가 20대 중후반의 나이에 무경력으로 입사한 것에 의문을 표했다.(공기업 인턴 경험이 있긴 했지만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다.) 본인 따님이 나와 꼭 5살 차이가 나는데, 벌써 일을 하고 있다며, 연봉 4,000만 원씩 5년이면 2억이 손해라는 말을 했다. 초봉이 4,000에 미치지도 않는 회사를 운영하며 이런 계산을 하다니 이해할 수 없는 논리였다. 식사시간의 대부분은 괜히 주변 회사에 기웃거리며 이직하지 말고 맡은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다 보면,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마지막에는 갑자기 이야기의 방향을 우회하더니, “솔직히 삼성과 같은 기업에서 너희를 원하지 않는 것은 맞지 않느냐”며, 그런 곳에 갈 스펙은 되지 않으니, 여기서 열심히 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본인 기업이 얼마나 성장세인지, 직원 수가 세네 명이었던 기업을 어떻게 100명이 넘는 회사로 키워냈는지 이야기하며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 기업에 입사한 신입사원에게는 삼성에는 가당치도 않은 비루한 인간들 임을 상기(?)시키더니 본인 기업은 치켜세우다니. 식사를 하며 이직에 대한 열의를 불태웠다.
셋째로, 나는 내가 원하는 지루하고 평범하며 평화로운 삶이 이런 곳에서는 실현될 수 없으며, 그러한 삶을 위해서는 많은 조건들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본가에서 떨어져 살아도 좋으니, 교통 체증 없이 출퇴근할 수 있는 곳을 선호했다. 공기업에서 근무하게 된다면 순환근무는 괜찮지만, 교대근무는 하고 싶지 않았다. 내 업무량을 채우지 못해서 야근하는 것은 괜찮지만, 여타 에너지 소모적인 이유들 (상사가 아직 퇴근하지 않아서, 선배님들의 눈치를 보느라와 같은 이유)로 내 퇴근이 미뤄지는 것은 불만이었다. 이런 것은 결국 기업문화, 분위기, 시스템이 가장 크게 작용하고 개인 한 사람이 바꿀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내가 근무했던 곳은 그런 의미에서 내가 원하는 삶과 맞지 않았다. 주간 회의나 사무실 청소를 위해서 일찍 출근해야 하고, 출퇴근 시간에 대한 존중이 없고, 사람들이 바쁘다 보니 굉장히 날카로웠다. 인턴 경험 없이 이곳에 들어왔다면 모든 회사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얼마간은 버텼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미 세상에는 많은 좋은 기업들이 있고, 모두가 이런 환경에서 근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