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파 Jan 21. 2024

아무튼 취업, 콘솔사 (1)

취준 4년 차에 다다른 나는 어떤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공기업 지원을 잠시 쉬더라도 정신과 신체를 건강하게 돌려놓을 시간이 필요했고, 알량한 대학 간판과 약간의 외국어 능력만을 무기로 콘솔사에 지원했다. 사실 콘솔사를 지원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곳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몰랐으니까. 모 취업 사이트에서 '포워딩, 무역, 선사' 등을 키워드로 나에게 맞는 직장을 찾았다. 왜 갑자기 무역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지 묻는다면, 철도 공기업 인턴 시절 만났던 주임님의 조언이 크게 작용했다. 주임님은 해운 선사에서 근무하다가 아이를 낳고 기르기 편한 곳으로 이직하신 거라고 했다. 퇴사하기는 했지만, 일 자체가 너무 재밌었고 중국어와 영어를 할 줄 알아 쏠쏠히 덕을 봤다고 했다.


영어를 전공하고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갔다 온 나는 귀가 솔깃했다. 이렇다 할 성과도 없이 벌써 3년 넘게 공기업 취준생 타이틀을 달고 있었다. 서류, 필기라는 관문을 통과해야만 면접이라도 볼 수 있는 공기업과는 달리 일단 서류만 통과하면 그래도 면접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에서 사기업의 채용 프로세스가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소위 말하는 대기업이나 좋은 기업에 들어가기에는 내가 너무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체험형 인턴 경력뿐이고, 공백기도 길었다. 할 줄 아는 외국어가 몇 개 있긴 했지만 그마저도 능수능란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집에서 가깝고, 추가적인 스펙 쌓기 없이 바로 지원할 수 있는 곳에 가고자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취업하게 된 곳이 이름도 생소한 콘솔사였다. 소량 화물들을 하나의 컨테이너에 적재하는 작업을 ‘콘솔’이라고 부르고, 이런 일을 하는 물류사를 ‘콘솔사’라고 한다. 해외 에이전트와 영어 메일로 소통하고, 화물의 사이즈를 가늠해 적정한 요금을 제시하고, 상대가 수락하면 도착지 에이전트에게 알리는 일이었다. 무역 단계에서 화주도, 선사도 아닌 그 사이를 잇는 일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꼭 1달을 근무했고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나 스스로의 개인적인 문제였다. 콩나물시루처럼 사람들이 가득 차 있는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길이, 도무지 1층에 도착할 것 같지 않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지각할 까봐 종종거리는 일이 모두 공기업 취업에 실패했기 때문에 겪는 거라는 좌절감에 시달렸다. 회사가 좋은 부분도 있고 안 좋은 부분도 있을 수 있는데, 회사의 단점을 발견할 때마다 '아, 내가 이런 곳을 다닐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만 둘 용기는 없었다. 3년 간 공부를 열심히 했든 안 했든, 긴 시간을 사회적 교류가 거의 없이 혼자 지내왔고, 꼭 일정한 시각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일정한 시각에 잠들지 않아도 되는 생활이었다.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많이 망가진 것이 느껴져서 힘들더라도 직장생활을 하며 정상적인 생활 루틴을 유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그런 바람도 오랫동안 실현되지는 못했다. 업무와 사람, 두 가지 중 한 가지 만이라도 괜찮았다면 버텼을지도 모르겠다. 업무는 절대적인 양이 많았다. 실질적으로 내 업무를 배분받기 전에 퇴사했기 때문에 나의 업무 전체를 소화해 본 적은 없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우리 팀 팀장은 나와 이야기할 기회만 있으면, "너의 기본적인 업무량 기준치가 너무 낮다. 다른 사람들은 훨씬 더 많은 양을 해내고 있다. 너는 신입이기 때문에 가장 쉽고 편한 부분을 넘겨주는 거다."라고 했다. 그리고는 곧잘 내가 지금 그만둔다면 회사에 주는 리스크가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더 두려운 부분은, “지금 네가 맡게 되는 파트는 너의 1인분이 아니며 조금 익숙해지면 일을 더 넘겨줄 것"이라고 했다. 정신이 아득해지며 나와 같은 부서의 2-3년 차 선배들이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업무 시간에는 거의 화장실도 못 가며 메일을 처리하고, 야근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연차는 월초에는 쓸 수 없었고, 반차는 아예 제도 자체가 없었다. 그 모습이 내 앞으로의 미래라고 생각하니 여기서 버티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마지막 결정타는 이때였다. 메신저로 다음 주 월요일에 '주간회의'를 위해 8시 30분까지 오라는 공지를 받았다. 나의 출근 시각은 9시였다. 금요일에는 사무실 청소를 위해 8시 30분까지 출근해야 하는 참이었다. 메신저를 받은 그날은 목요일이었고, 이 회사를 계속 다닌다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앞으로 얼마나 더 참아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에 처음으로 퇴사를 생각했다.

이전 03화 공기업 필기와의 싸움, 1승 없는 3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