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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파 Jan 17. 2024

왜 공기업인가: 인천국제공항공사와 콜센터

왜 하필 공기업인가 하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꽤나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왜 공기업인가 하는 질문에는 두 가지 이유로 대답할 수 있다.

첫째, 인천국제공항공사와 여행

둘째, 콜센터에서의 강렬한 기억


공기업의 시작은  인천국제공항공사였다. 공기업을 꿈꾼다면 누구나 가장 좋은 기업 중 하나로 꼽는 바로 그 기업 말이다. 나는 인천공항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국공을 목표 기업으로 삼았다. 사실 목표 기업을 삼았다는 말은 적확하지 않다. 뭘 해야 좋을지, 뭘 잘하는지, 뭐가 하고 싶은지 전혀 모르던 나는 인천국제공항을 좋아하는 마음 정도면 인국공에 입사하기 위해서 공부하는 데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공기업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공기업에 가고 싶어!’가 아니라, ‘인천국제공항공사에 가고 싶어!’가 먼저였다.


이렇게 공항을 좋아하는 것은 여행에 대한 설렘 때문이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고 외국어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여행에 대한 기억은 얼마 간의 지루하고 지진한 일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을 지녔다. 인천공항은 그러한 여행의 시작점이자 끝점이고, 그러한 공간이 주는 기운을 좋아했다. 그러나 공기업 판에서 인천공항은 그렇게 감성적이고 포근한 곳이 아니었다. 고고익선이라고 불리는 높은 토익 점수를 요구했고, 심지어는 봉사활동 시간에도 가점이 있었다. 높디높은 인천공항의 벽에 부딪혀 나는 점점 더 눈을 낮춰서 적은 연봉이라도, 공공성을 띄기만 하는 곳이면 어떤 곳이든 필기시험을 보고, 면접을 보기에 이르렀다.


두 번째 이유는 짧은 단기 아르바이트로 아웃바운드 콜센터에서 근무했던 경험 때문이다. 그곳은 주식을 하는 소액 투투자, 소위 말하는 개미들을 영업해 개미 그룹 안에 넣고 그들에게 어떤 종목을 매수해야 하는지, 매도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언하는 것을 명목으로 돈을 벌었다. 작은 사무실 안에서 내 휴대전화에 충전기를 연결하고는, 표로 정리된 산발적인 전화번호 목록에서 순서대로 번호를 꾹꾹 눌러댔다. 나의 임무는 전화를 걸어 주식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우리 기업에서 제공하는 (사실 기업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작은 사무실이지만) 주식 정보가 담긴 문자를 받아보겠냐고 묻는 것이었다.


업체에서는 '주식 정보를 위한 개인정보 이용 동의'를 한 사람들의 전화번호라고 했지만 막상 전화를 걸어보면 반응이 천차만별이었다. 대다수는 점잖게 "안 받아요." 혹은 "제 전화번호는 지워주세요."하고 말았다. 그 외에는 다양한 반응이 있었는데, 주식 얘기를 꺼내자마자 욕부터 하는 사람도 있었다. 상대가 욕을 하기 시작하면 나는 보통 아무 말 안 하고 그냥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그럼에도 수화기가 전화대에 안착할 때까지 상대는 욕을 퍼붓는다. 가끔 가다는 주식 때문에 인생을 말아먹은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이런 전화하면 사람들이 싫어할 거라고 나를 타이르던 아저씨도 만났다. 나도 그 말에 동감하기 때문에 너털웃음을 짓다가 통화를 마쳤다. 또 어떤 사람은 본인 번호를 어떻게 안 거냐며 화를 내었고, 어떤 사람은 받자마자 끊어버리거나 전화를 아예 받지 않았다.


나는 전화를 걸면서도 은근히 상대가 내 전화를 받지 않기를 바랐다. 주식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고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그런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거북했다. 내가 생산성을 낼수록, 더 일을 열심히 할수록, 그러니까 전화를 더 많이 걸고, 주식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수록 누군가에게 불행을 전파할 확률이 높아질 거라 생각하니까 무기력해졌다. 나는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나와 같은 감정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나의 큰 착각이라는 것을 알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점심을 다 함께 먹으며 나보다 4살인가 어린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친구는 본인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문자 메시지를 받게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늘 오전에는 3명, 어제는 4명이 문자를 보내달라고 했다며 기뻐했다. 나는 이것이 기뻐할 만한 일인지, 내가 보람을 느껴도 되는 일인지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때문에 고작 2주를 일하고는 인턴을 하게 되었다는 핑계로 곧장 그만두었고, 업체에서도 별말 없이 나를 보내주었다. 열아홉 살에 수능을 끝내고 곧장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던 다른 학생 두 명은, 솔직하게 일이 힘들어 못하겠다고 했다가 관리자의 “앉아서 편하게 전화만 하면 되는데, 이게 힘들면 어떤 일을 하려고 하냐”는 꾸지람을 들었다. 너무 순수했던 탓이다.


'몸이 편하면 다 되는가, 정신이 불편한데.'라는 생각을 입에 꾹 담고 나는 퇴사했다. 이때의 경험은 신기하게도 내 마음속에 강렬히 남아있었다. 내가 회사의 가치관이나 수익을 내는 방식의 도덕성과 같은 것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공기업이었다. 전기를 생산하고, 물을 관리하고, 공항을 관리하고, 지하철을 관리하는 모든 일은 사람들의 안녕과 편의를 위한 일이라는 것에는 틀림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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