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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파 Jan 18. 2024

공기업 필기와의 싸움, 1승 없는 3년

서울 사람인 나는 필기시험을 위해 안동까지 갔던 적이 있다. 아침 9시 시험을 보기 위해서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세네 시간을 달려갔다. 새벽 네다섯 시에 출발하느라 나는 뒷좌석에 교재를 안고 누워 잠을 잤고, 아빠는 어둠을 헤쳐 달려갔다. 뒷자리에 누워 올려다보던 아빠의 뒷모습과 목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아빠가 깨우는 소리에 시험 20분 전에 깼고, 나는 결연하게 시험장을 향해 갔다. 오늘은 붙으리라.


가장 먼저 내가 속한 교실에는 결시자가 몇 명이나 있는지 살폈다. 결시자가 절반 가까이 되었고, 나에게 합격의 행운이 찾아올 확률이 그만큼 높아졌다. 내가 서울에서 안동까지 달려왔다는 것은 이 시험에 확신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 인기 있는 기업도 아니었고, 내가 어려워하는 회계와 재무도 출제되지 않는 시험이었다.


하지만 복병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300문제 가까이 되는 인성검사를 푸는데, 한두 문제 잘못 선택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 은행 인성검사에서 탈락했던 것이 기억나, 이번에는 그런 실수 없이 omr카드를 교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omr카드를 교체하고 다시 마킹을 시작하는데, 절반 가까이 남았을 때쯤, 시험 종료 시간이 다가옴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어? 이럼 안되는데’하는 생각과 함께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정말로 중학교 첫 국어 시험 때, 정말 인생에서 처음으로 중요한 시험을 봤을 때 이후로 그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심장이 두근대고 손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가 하얘지는 것 같아서 하나씩 마킹하다가 일자로 쭉 그어버리기를 반복했다.


정말 웃기게도, 그때 내 머릿속을 가득 메운 것은 주차장에서 자고 있을 우리 아빠였다. 새벽부터 아침까지 운전을 하고 달려와 차에서 나를 기다리며 잠들어 있을 아빠를 생각하니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점수가 부족해서도 아니고, 인성검사를 다 답변하지 못해서 떨어진다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았다. 다행히도, omr카드는 시간에 맞춰 제출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험에는 붙었냐고? 떨어졌다. 전공이 너무 쉽게 나오는 바람에 변별력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합격자는 분명 있었을 테니, 내 실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당연하다. 점수가 충분하면 붙고, 부족하면 떨어지는 게임이다. 나는 이런 게임에서 3년 동안 한 번도 승리한 적이 없었다. 참 감사하게도 내 친구들과 가족들은 항상 이런 나라도 내가 하고자 하는 바를 응원해 줬고, 나보다 더 나의 취업을 기다려줬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이런 사람들을 곁에 둔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3년 동안 한 번도 필기에 합격하지 못했지만 4년 차에 네다섯 번 필기에 합격하고 지금의 기업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덕이 크다. 3년 중 어느 한순간에 포기했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깔끔하게 포기하고 더 좋은 직장에 갔거나, 대학원에 진학했거나, 프리랜서가 됐을 수도 있다. 인생엔 여러 갈래의 길이 있고, 어떤 선택이 더 옳은 선택이었는지, 더 나에게 맞는 선택이었는지는 죽기 전까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그래서 내가 한 선택이 가장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며 사는 편이다, 마음 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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