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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파 Feb 11. 2024

내부인이 되기란 쉽지 않다: 면접의 늪

내부인이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은 대부분 면접이다. 취준 마지막 1년 동안, 나는 정규직과 계약직 면접을 모두 합쳐 10번의 면접을 봤다. 2번의 퇴사와 3번의 입사가 있었으니, 10번 중 세 번 합격한 셈이다. 30%의 합격률이라니, 꽤나 괜찮은 것 같지만 매번 꼭 합격할 것 같고 꼭 입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의 프러포즈가 거절당할 때마다 느끼는 절망감과 좌절감, 무기력함은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가 쌓여 이삿날 냉장고 위에 쌓여있는 먼지더미처럼 마음속에 쌓여만 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정장을 차려입고, 머리를 만지고 화장을 하고 집을 나선다. 면접 볼 건물 앞에 도착하면 ‘이곳은 어떤 곳일까, 내가 이곳에서 일하게 된다면 어떨까‘ 하는 온갖 생각과 더불어, 연습한 만큼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고 오자는 다짐을 한다. 평소 구두를 잘 신지 않아 어색한 나는 구두를 가방에 넣어 갔다가 건물 앞에서 갈아 신고 들어간다. 대기장에서 경쟁자이자 동료 면접자들을 마주하고, 초조한 긴장의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내 이름이 불린다. 면접장 안에 들어가면, 최대한 공손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준비한 말들을 내놓는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집에 가면, 파죽음이 된다. 나는 왜인지 항상 면접 자체에 미련이 남거나 아쉬운 적은 없었다. 10번이나 면접을 봤다는 사실을 이미 얘기했으니 알겠지만, 항상 면접을 잘 봐서 후련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면접을 망쳤든, 만족스러웠든, 면접이라는 과정 자체가 주는 압박감과 스트레스가 커서, 그것에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 큰 해방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나의 준비과정이 잘못 됐을 수도 있지만, 나는 면접 복기는 하지 않았다.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대화와 같은 것이라, 과정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소용돌이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작은 말투 하나가 나를 불합격으로 이끌었는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나를 불합격으로 이끌었는지, 어쩌면 처음부터 뽑을 사람이 정해져 있었는지 온갖 생각이 더해져 앞으로 나아가기 더욱 힘들게 했다. 때문에 면접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에 대한 공부는 계속하되, 복기는 하지 않았다.


면접에 딸려오는 경제적인 타격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한 번은 인천공항에서 면접을 봤는데, 왔다 갔다 공항버스를 타고 이동하니 3만 원이 넘는 가격이었다. 이곳은 면접비도 주지 않아서 더욱 타격이 컸다. 건설사 계약직으로 근무하면서 면접을 볼 때는 없는 연차를 끌어 쓰면서 면접을 보다 보니, 이동 비용에 끌어 쓴 연차 비용까지 감당해야 했다. 인천공항에서 면접을 봤을 때는, 1시간 정도 기다리다가 세 문제에 답변하고 집에 돌아왔다. 5배수 면접에서 어떻게 단 세 문제 만으로 사람을 선택한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경기도 공공기관 면접을 봤던 적도 있는데, 나의 답변은 아주 만족스러울 만큼 훌륭했다고 생각한다.(물론 개인적인 자가 평가이다.) 인성 면접, PT면접, 토론 면접을 하루에 실시하는 방식이었는데 같이 면접 본 지원자가 내가 합격할 것 같다고 할 만큼 실수 없이 대답했고, PT도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차별성이 있었다. 하지만 ‘면접관들이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면접관들과의 티키타카가 맞지 않았다. 교직이수를 해서 사업에 교육학과 관련한 내용을 삽입했는데, 이것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질문에 대답하면서 ‘정성평가’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돌아오는 질문은 ‘정성평가와 계량평가가 같은 개념인가요?’였다. 면접관들이 교육학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이 없는 것이었다. 결국 내 대답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지금 근무하는 곳에서는 PT면접 후에 ‘저는 아주 흥미롭게 들었어요.’하는 답변을 들었다. 드디어 합격 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데 사업안이 굉장히 거시적이어서 우리 공사 사장님, 아니 OO부 장관님 정도는 되어야 시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는 말을 덧붙이셨다. 결과를 기다리면서도 이 멘트가 과연 합격 시그널인가 탈락 시그널인가 굉장히 궁금했었다.


10번의 면접마다 저마다의 스토리가 있고, 떨어졌다면 떨어진 이유가, 붙었다면 붙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떨어질만했다고 생각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지진하고 에너지 소모적인 과정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혹은 당분간은) 면접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우습게도 취업을 한 지금 느끼는 가장 큰 행복 중 하나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얻은 것은 나를 보여주면서도 적당히 꾸며야 한다는 것.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적당히 정제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 그것이 면접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내부인들과 융화될 만한 사회성을 지니면서도, 유능한 사람인지를 보이는 것. 다른 모든 것들은 결국 이를 보여주기 위한 준비과정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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