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의 조건
한동안은 팟캐스트에서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열심히 청취했었다. 이동진 작가, 김중혁 작가, 이다혜 기자, 허은실 작가가 돌아가며 나와서 떠드는 수다가 너무 좋았다. 수다에 끼지 못하니 소개되는 책들이라도 사들여서라도 그들 속에 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빨간책방 덕분에 나의 서가는 평소 접하지 않았던 다양한 책들로 채워졌다. 한 번은 이동진 씨가 『위대한 개츠비』를 다룬 적이 있었다. ‘옳거니 이건 사야 해.’라며 곧장 K 문고로 달려갔다.
그 당시 『위대한 개츠비』는 민음사, 문학동네, 열린 책들 등 굵직한 출판사를 비롯하여 작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만 해도 여럿이 되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아마도 번역가가 누구인지부터 따져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책의 몸을 사랑하는 자로서, 당연 제일 멋진 몸을 가진 『위대한 개츠비』를 선택했다. 1984출판사에서 나온 것으로 짙은 초록-디자이너의 눈썰미로 짐작컨대 C90, Y80쯤 되는-의 표지 바탕을 금색의 미려한 타이포그라피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깊이 접혀 들어간 표지 날개는 사뭇 작을 수 있는 책을 다부져 보이게 했다. 역시 좋았다. 표지를 넘겨보니, 그럼 그렇지, 이재민 디자이너가 표지를 디자인했다. 디자인 아우라가 책에서 요즘말로 ‘뿜뿜’ 쏟아졌다. 두께며 비례, 종이 질이 나무랄 데가 없었다. 표지를 코팅하지 않은 것까지 좋았다. 나는 곧바로 돈을 지불하고 책을 모셔왔다. 읽기도 전에 벌써 흐믓해서 사실은 내가 읽은 『위대한 개츠비』가 저 초록 책인지 아닌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저 책을 사들인 순간만큼은 이렇게 생생한데.
책은 오브제로서 내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는 내가 가진 사물들이 아름답기를 원한다. 책장의 책등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 한 곳이 간질간질하고 싶다. 책을 손에 쥘 때마다 차오는 사물감에 충만하고 싶다. 좋은 책이라면 첫 번째로 내용이 훌륭해야 한다고 말하겠지만 나 같은 사람에겐 내용보다 몸이 구매의 요건이 되기도 한다. 책의 무게, 내부의 종이나 활자, 넘기는 소리 등 온갖 다차원적인 감각을 발동시키는 몸이야말로 지갑을 열지 말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지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