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회복할 때

쓸쓸하고 외로운

by 영영


나의 눈은 햇볕을 본다, 길게 드리운 사각형 그림자. 나의 귀는 음악을 듣는다. 나의 입은 커피 한 모금의 쓰고 단 맛을 음미한다. 나의 온몸과 오감으로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아침에 읽던 신문과 잠자리에 들고 가던 책, 음악을 들려주던 오디오, 사이드테이블 위의 째깍째깍 알람시계는 나를 세계에 발 딛게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밤이면 잠자리로 들고 가던 책을 잊고 스마트폰부터 챙긴다. 잠이 오지 않는 의식에 온갖 소리를 쏟아부으면 끝도 없는 꿈을 꾸며 잠에 빠져든다. 폰이 없으면 일어나는 불안증은 벌써 오래되었고, 모든 일상적 습관도 폰에게 잠식당했다.


독서와 식사와 휴식 사이사이 시도 때도 없이 불쑥 침범하는 스마트폰. 생각은 쪼개져 거대한 바다위에 수백개의 섬처럼 떠있다. 나는 그 조각들 사이를 점프하면서 일관성 없는 사고를 이어간다. 이시대의 연결은 점핑이다. 그 사이에 가로놓인 바다의 거리만큼을 두고 관계를 이어간다. 거대한 나무의 줄기처럼 연결되었던 인간관계망도 변했다. 사람들이 점처럼 어느날 당겨왔다 멀어진다. 그가 띄운 이미지와 텍스트로 얼굴없는 그를 읽는다. 아랫층 윗층의 이웃은 더이상 나의 관계가 되지 못한다. 액정 뒤의 삶을 사는 시간이 많아진다. 검색을 하려고 시작했다가 알림을 따라 앱들사이를 점핑하고,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결제하고 있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빠져나오는 일이 잦아졌다. 그 세계에서는 다른 이가 나의 의식의 고삐를 쥐고 있다. 생각하며 행동하기가 어렵다. 나는 오로지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인다.


나의 의식이 매끈한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동안 나의 몸은 세계에 홀로 남겨졌다. 쓸쓸하고 외로운 소외.

책이 우리로부터 소외되듯이 우리도 세계로부터 분리되고 있다. 메를로퐁티는 몸은 의식과 세계의 매개체라고 했다. 우리는 몸을 통해서 세계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현실의 언저리로부터 구제되기 위해는 숨죽이고 있던 몸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육신의 감각에 집중해 들숨 날숨의 경이로움을 느껴야 할 때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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