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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Jun 30. 2021

몸을 쓰는 기쁨

노동의 책

- 몸을 쓰는 기쁨

지난 여름, 실크스크린 프린팅 기법으로 책을 만들었다.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컴퓨터로 옮겨 레이아웃을 잡고 페이지 배열을 맞추어 제판을 했다. 두가지 컬러를 사용했기때문에 16페이지 남짓한 책을 위해 16개의 판이 필요했다.

실크스크린은 시간과 노동의 집약체이다. 판이 준비되면 한 장 한 장 더듬어 책이 될 종이를 고르고, 실크스크린 판을 고정하여 물감을 판에 올린다. 스퀴지를 쓰-윽 힘주어 두세 번 밀면 실크스크린 망점을 통과한 잉크가 종이에 밴다. 프린팅 한 것들은 책상 위에 널어놓고 말린다. 같은 페이지들이 쌓여가지만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은 없다. 조금 더 나은 결과를 위해 힘 조절과 프린팅의 조건 요소들, 이를테면 압력, 종이의 결, 물감의 농도, 판의 상태, 스퀴지의 속도나 컨디션 등을 점검하고 조절한다. 수없이 반복되는 노동으로 등이 뻐근하고, ‘내가 왜 이것을 시작해 이런 삽질을 하고 있나, 자동 인쇄기가 왜 나왔겠어’ 하는 후회가 밀려올 무렵 내지 인쇄가 끝난다.

겹쳐지거나 희끗하게 인쇄된 B컷들을 가려내고 남은 작업들을 페이지별로 정렬한다. 책상을 깨끗이 닦고 인쇄된 종이를 접는다. 두세 장씩 접는 것이 반듯하다. 제본을 시작한다. 페이지 별로 모아 고정하고 송곳으로 구멍을 뚫는다. 힘에 따라 구멍이 작아지기도 하고 커지기도 하므로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이즈음 진행되면 점점 무한 노동에 길들여져 기계처럼 정확히 반복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굽어진 등에겐 미안하지만 묘하게 뿌듯하다. 일전에 유투브에서 최진석 교수철학자가 말하길 어릴 때 콩 골라내기 작업을 한 적이 있는데, 한 말의 콩을 고르고 나면 어떤 무아의 경지에 도달한다고 했다. 아마 그 비슷한 느낌일 것 같다. 송곳 작업이 끝나면 밀랍이 칠해진 실을 바늘에 꿰고 차례차례 구멍을 통과하여 페이지를 엮는다. 거의 끝이 보인다. 압축기로 하루쯤 눌러 두었다가 재단기로 말끔하게 각 면의 거친 외곽을 잘라내고 겉표지를 만들어 붙이면 책이 된다. 지난한 과정이다. 하지만 가지런히 제본을 마친 책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마음 깊이 흡족함이 번져온다. 몇 주가 걸린 노동은 기분 좋은 피로감으로 끝이 난다.

디자인의 아버지, 윌리엄 모리스가 강조했듯이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노동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가 말하는 예술은 인간의 노동에서 나온 아름다움과 인간의 삶의 기쁨을 유발하는 것들을 포함한다. 자신이 주인인 노동은 기쁨의 원천이므로 예술을 추구하는 노동은 누구도 빼앗아서는 안되는 삶의 필요불가결한 요소라고 윌리엄 모리스는 주장했다. 책이 아름다워지도록 고투하는 자발적 노동은 단순한 노동을 넘어서 삶의 필수적 요소임을 깨닫는다. 글 쓰는 일보다 책 만드는 노동이 내게는 더 만족스럽다. 점점 미세한 조절이 가능한 숙련된 몸을 느끼는 것이 기쁘다.


노동은 사물에 가치를 부가한다. 아무리 작은 책이라도 나의 노동이 포함된 책은 두텁고 밀도가 높다. 백 번의 손을 거쳐서 우리 식탁에 오르는 쌀밥처럼 마음의 양식인 책도 손을 많이 거칠수록 읽는 이의 배가 더 부를 것이다. 정성 어린 물건에는 영혼이 깃든다. 몸을 써서 몸을 만드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체험 중 하나이다. 핸드메이드라는 말을 취미 행위나 제3세계 생산수단으로 여겨왔다면 이제부터는 백 만년 전 돌도끼를 다듬던 구석기의 유전자를 깨워 ‘도구의 인간’이 되어보는 건 어떨지.


근데 대표적인 가사노동인 청소나 설거지는 도무지 좋아지지가 않고 능숙해지지도 않네요. 역시 노동 중에 최고는 무언가를 만드는 노동인듯 합니다. 창조적 노동의 단점이라면 집이 제대로 어질러진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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