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고 싶은 책

책의 몸을 즐기는 법

by 영영

- 만지고 싶은

나는 행실이 나쁜 소비자다. 로드샵에 전시된 물건들도 꼭 만져보고, 백화점에 걸린 옷들도 쓰다듬어 질감을 확인한다. 예쁜 커피잔을 발견하면 들었다가 놓기라도 해야하고, 심지어 미술품을 걸어놓은 전시장에 가서도 만지고 싶어 안달인데 억지로 참는 모양새로 관람을 한다. 서점의 책은 오죽하랴, 이 책 저 책 넘겨보고 속지는 손가락 사이에 끼워 질감과 두께를 꼭 확인하고, 후가공이 특이하면 정체를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런 습관의 소비자 때문에 ‘만지지 마세요' 라고 쓰여 있거나 비닐로 싸인 책들도 있다. 그러면 왠지 마음이 삐딱해져 구매하지 않는다. 나쁜 심보다. 책방 주인이면서 그런 생각을 하다니 놀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촉각에 대한 나의 욕구가 강하다는 의미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온라인 서점의 경우는 오로지 시각에 의존하다 보니 화면에 보이는 책 이미지(스틸 컷)가 중요하다. 온라인 쇼핑몰의 상품이 그러하듯 이미지가 판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매력적인 배색과 그럴싸한 리얼리티가 요구된다. 전면과 함께 비스듬히 두께를 드러내는 입체 컷이 필수다. 온라인 이미지를 보면 만져서 확인하고 싶다. 화면으로는 나의 욕구가 충족되니 않으니 실체를 잡아보고 싶어서 주문하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면의 이미지와 실제의 책은 같지 않다. 실물을 보고 때때로 실망도 따른다. 온라인으로 구입하는 제품들의 만족도가 낮은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책 내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아쉬운 건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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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출판하여 유통하는 독립서적은 주로 독립서점의 공간에서만 만날 수 있다. 독립서적은 대량생산을 전제로 하지 않으므로 제각각 개성이 뚜렷하다. 크기, 두께, 질감이 다양한 책들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다 보니 대형서점보다 독립서점의 책들이 더 손을 많이 탄다. 디지털 미디어와 책의 차이가 바로 촉각일 것이다. 서점 주인이 아무리 책 만지는 것을 싫어해도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며 책을 만지고 펼치게 된다. 우리의 시선과 손은 하나의 기관처럼 작동한다. 의지로 제어되는 문제가 아니다. 쓰다듬고자 하는 욕구가 무지막지하게 강력하다는 것을 느낀다. 포유류의 촉각에 대한 집착이 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멋지다’는 ‘만지고 싶다’와 동의어이다. 만지고 싶다는 것은 꺼려해야 할 일이 아니라 그 만큼 매력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한다. 우리는 매력적인 것을 만나면 하나가 되고 싶다. 끌어안고 싶다. 남녀가 원래는 하나였다가 둘로 나뉘어져 애타게 둘이 사랑하고 싶어한다는 신화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합일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기본 욕구다.


일본의 한 장정(裝訂) 수집가는 책을 전시용으로 빌려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관람객이 책을 만지도록 하는 전시라야 대여해주고 싶다고 했다. 전시품을 만지지 못하게 하는 게 상식인데, 그 사람은 ‘내가 입장객이라면 틀림없이 당신이 디자인한 책을 만지고 싶을 겁니다’ 라고 뜻을 밝혔다. 멋진 책을 보면 온몸의 감각을 열고 체화하고 싶은 마음을 잘 이해하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만든 책도 누군가가 만지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하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합일의 욕구를 불러일으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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