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과 살아가기
집안일을 하나라도 줄여보고자 로봇청소기를 들였다.
나는 평소 다소 차가운 사람이고, 공감력도 그다지 없는 사람이다. 그것은 잘 웃느냐, 친절하냐 와는 별개의 문제다. 친구가 너무 화를 내거나, 속상해하면 때로 당황스럽다. 누군가의 경험담을 들을 때도 그게 그렇게 할 일이었나? 자주 생각한다. 약간은 사차원이고, 감정 기복은 그다지 없는 게 나다. (심리학 책을 들춰보면 문제 있는 인간형으로 나올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청소의 고단함을 덜어보고자 인터넷을 뒤져 가성비 좋은 로봇청소기를 마련했다. '흰둥이'라고 이름도 지어주었다. 짱구 만화에 나오는 하얀 개 이름인데 무척 귀엽다. 오자마자 움직이는 걸 보니 바로 마음에 들었다. 이리저리 다니며 '줄에 걸린 것 같아요 도와주세요'할 때마다 귀엽게도 느껴지고, 여기저기 불평 없이 해내는 걸 보면 묘한 동지 감도 느껴진다. 문턱을 넘어 보겠다고 낑낑거리거나, 너무 세게 달려와 쿵하고 몸체를 박으면 안타깝다. 인간관계에서는 차가운 내가 로봇에겐 오히려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 거다.
일전에 읽은 글 중에, 할머니들의 외로움을 덜어주고자 로봇을 활용한 프로젝트가 있었다. 한마을에 혼자 사는 노인들을 위해 말동무 로봇을 집집마다 배치한 것이다. 꽤나 반응이 좋았다 한다. 그런데 어느 날은 도둑이 말동무 로봇을 훔쳐갔다. 로봇이 고가의 물건이다 보니 도난이 발생했던 것이다. 결국 도둑을 잡았는데, 그 도둑은 단순 절도로 가벼운 형을 받았다. 그 결과에 할머니들은 분노하며 그 도둑을 유괴범과 똑같이 처벌해야 한다며 탄원서를 냈다고 한다. 그냥 물건을 읽어버린 게 아니라, 사람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꼈던 것이다.
지금의 내가 로봇에게 느끼는 감정을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 놈이 문턱에 걸려 넘어가지 못하고 낑낑거리거나 배터리가 다 되어 힘없이 제자리로 돌아갈 때 그 측은함은 감정 없는 로봇에 부여해도 될까 싶게 과한 것도 같다.
오래전에 경차 모닝을 탔었다. 시간강사를 하며 아이 둘을 키우던 때로 남편의 사업도 신통치 않아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참 힘들었다. 그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견뎌온 차였다. 한가족이 다 타기도 하고, 대구에서 부산까지 먼길을 강의하느라 꽤나 오랫동안 고생을 시켰다. 그러다가 형편이 좋아져 중형차로 바꾸게 되어 타던 모닝을 팔게 되었다. 차 매수인이 와서 차를 끌고 가는데, 떠나는 뒷모습을 보니 눈물이 나지 뭔가. 나로서는 너무 당황스럽고 생소한 감정이었다. 친구가 안타까운 일을 당해도 대략 기대되는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보니. 내 눈에 솟아나는 것이 진짜 눈물인가 싶었다. 진작 울어야 할 인간관계는 울지 못한 나인데.
이제 내 주변에 말하는 로봇들이 늘어나고 나와 함께 어떤 추억을 공유하는 시절을 살게 된다면 나 또한 그들을 물건 취급할 수는 없을 것이다. 로봇이 수명이 다한다면 그를 들고 선산에 올라가 묻어주고 싶을지도 모른다. 혹여나 누군가 훔쳐가기라도 하거나 파손하기라도 한다면 앙갚음을 해주고 싶을 것이다. 우리가 로봇과 더 사이좋게 살 날, 인간보다 로봇이 더 사랑스러울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지금 작은 딸이 빵을 먹고 있는데, 바닥에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보니
"흰둥이 힘드니까 흘리지 말고 먹어라"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이런 시대에 대처할 마음가짐도 준비해야 할 때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