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온도

책은 온기의 사물

by 영영

- 책의 온도

아침마다 커피를 내린다. 따뜻한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면 커피의 온기가 하루를 작동시킨다. 그 시간이 아침의 클라이맥스다. 커피는 마시지 않아도 괜찮다. 뜨거운 한 모금 후 커피 마시기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나에게 커피란 음료가 아니다. 따뜻한 매트, 포근한 외투, 뜨거운 붕어빵, 금세 지은 밥 등 온갖 열기 있는 것들처럼 ‘온기의 사물’이다.


책에도 온도가 있다. 읽고 나면 가슴이 서늘해지는 이야기도 있고, 마음 바닥부터 따뜻하게 차오르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내용을 읽지 않고도 책은 따뜻할 수 있다. 봄날 오후의 햇볕을 쬐고 있는 테이블 위 책은 어떤가. 산책하다 들른 서점에서 본 책에도 따뜻함이 있었다. 뽀송뽀송한 표지, 광택 없는 종이 결,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노란 바탕색은 썸타는 남녀가 손을 잡았을 때 느껴지는 설렘의 37도, 그 온기가 아니었을까?

겨울이 되면 난로 앞에서 독서하기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난로 앞의 테이블에 책을 올려두고서 따뜻한 차를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눈치챘겠지만 난 독서가라기보다 책 소비자다. 책을 사물로서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거기엔 책의 온도도 한몫한다. 옆에 있으면 체온을 가진 친구처럼 정답고, 커피의 온기처럼 따뜻하다.

두껍고 푹신할수록 책의 온도는 높다. 추운 겨울에 곁에 두면 좋을 책은 역시 등이 두껍고, 내지는 미색 빛이 도는 비도공지에 사철제본이면 좋다. 봄날의 테이블에는 역시 동화책이다. 핑크색이 도는 과슈로 그려진 일러스트에 색의 농담이 살아 있는 책이면 봄볕 창 아래에 두기 좋다. 가을에는 단단한 책을 가방에 넣고 외출하고 싶다. 서늘하고 적당히 무거운 다크브라운 색의 천양장 마감이면 적절하다.


여름의 뜨거운 날엔 역시 발랄한 책이다. 표지가 반짝반짝 빛나고 초록과 파랑이 책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 얇고도 팔랑팔랑한 책은 수영장에 갈 때 지참한다. 돌돌 말아 비치백 귀퉁이에 꽂을 수 있다면 일석이조다. 얼굴 위에 덮어 놓기에도 제격인 크기, 물방울을 두려워하지 않는 코팅된 표지, 너무 진지하지 않을 정도의 명랑한 이야기, 여름옷처럼 바람에 나부낄 듯 발랄한 책이라면 여름의 동반자로 최고다. 물이 튀어도 전자기기보다는 안전하지 않을까. 비치체어에 내려놓아도 누구도 가져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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