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너머의 행복

가을만큼 생각이 많아지는 어느 봄날의 생각 정리

by 애란

이전에는 내가 우울하기 때문에 불안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울감이 옅어지면 불안감도 자연스레 옅어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를 탐구해 본 바, 불안은 우울 때문에 따라온 언젠가 사라질 존재가 아닌, 내가 가진 기질 중 하나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으면 우울감 또한 사라지지 않을 테고, 나의 불안은 나를 떠나가지 않을 테니 결국 우울도 나의 불안의 정도에 따라 그 깊이가 달라질 테지. 언젠가부터 불안감이 우울감보다 높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지키기 위해, 가능한 이 '불안'이라는 기질을 최대한 내게서 떨어트려 놓고 싶다.


사람마다 증상은 모두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불안도가 극도로 혹은 갑자기 높아지면 역류성 식도염이 심할 때처럼 심장 쪽이 뻐근한 듯 조이고 답답한 기분이 들고, 얼굴에 열이 오르면서 귀를 나의 심장에 가져다 댄 듯 심장 소리가 크게 들린다. 반추 (= 어떤 일이나 사건을 반복해서 생각하는 일) 하는 것은 정말 좋지 못한 행동임을 알지만,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바닥에 누워있는 것처럼, 하려고 했던 일을 눈앞에 두고 SNS를 계속 보는 것처럼.. 불안도가 높을 때면 자꾸만 반추를 한다. 좋지 못한 행동이란 걸 인지하고 있음에도 자꾸 반복하고, 스스로를 탓한다.


어느 날 문득 든 생각이라고 여겼지만 어쩌면 많이 지쳐서 자연스레 들었던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이 불안감을 내게서 떨어트려 놓는 게 불가하다면, 불안함의 강도를 낮춰보기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마음뿐 아니라 나의 몸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불안도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찾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함을 느끼는 순간 즉각적으로 도움을 줬던 방법

의식적으로 복식 호흡하기

목 뒤쪽 마사지 해주기 + 귀 뒤쪽과 목 뒤쪽에 허브 오일 바르기

잠시 그 상황에서 벗어나 다른 환경에 놓이기
(바깥공기를 마실 수 있다면 가장 좋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다른 공간으로 잠시 벗어나 있기)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시각적, 청각적 자극을 최대한 낮추기


일상에서 불안한 마음이 덜 들도록 하는데 도움을 줬던 방법

7시간-8시간 정도 푹 자기

기상 후 20-30분 정도는 아무것도 듣고, 보지 않기

하루에 커피 두 잔 이상 마시지 않기

원하는 만큼 불안해 하기

마음이 좀 안정되고 나면, 일기 쓰며 혼자 정리해 보기



전에는 불안해하는 내 모습을 보며 자책도 많이 했었다. 일의 경중을 떠나 며칠을 그것 때문에 불안에 떨고 힘들어하는 나 자신이 싫었다. 불안하고 걱정하면서 지낸 것 외에 하루동안 아무것도 안 했다는 생각이 들면 그것이 또 다른 불안감을 내게 심었다. 그래서 이럴 거면 차라리 원하는 만큼 마음껏 불안해하자고 다짐했다. 그럼에도 후회와 아쉬움은 있겠지만, 가장 강렬한 감정은 그 순간에 모두 쏟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 방법은 내게 큰 도움이 됐다. 이 다짐을 실천한 이후, 나는 불안할 때 '진짜 나의 감정'을 감추지 않고 표현할 줄도 알게 됐다. 예전에는 꽁꽁 닫아만 뒀던 마음의 문을 열고, 말이 됐든 글이 됐든 그 속에 들어있는 것들을 끄집어낼 수 있게 됐다. 그래서인지 요새는 전보다 좀 더 자주 울고, 내면에 감춰뒀던 속마음이 담긴 날 것의 문장을 써내기도 한다. 이 불안이 내게서 없어지지 않는 거라면, 내 속에 계속 품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면, 언제까지나 전처럼 마음에만 가둬둘 순 없는 거라는 걸 비로소 깨달은 거다.


불안한 순간엔 마음껏 불안해하되, 매일매일의 삶에서는 나를 안정시킬 수 있는 습관을 차곡차곡 쌓아가려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단정한 아침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는 삶을 사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어쩌면 내게 그토록 떼어내고 싶어 했던 나의 기질이,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왜 나를 알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내게 행복을 주는 순간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이유를 계속해서 나에게 상기시켜 주는 나에게 꼭 필요한 기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조로운 삶은 역시 단조로운 행복만을 약속한다. 지난 늦여름 내가 만난 주리가 바로 이 진리의 표본이었다.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준 주리였다. 인간을 보고 배운다는 것은 언제라도 흥미가 있는 일이었다. 인간만큼 다양한 변주를 허락하는 주제가 또 어디 있으랴.

양귀자, ⌜모순⌟, 쓰다, 1998, p.229


'앞으로 경험할 불안해하는 순간들이 이제껏 경험해 왔던 것보다 훨씬 많겠지만, 그것과 비례해서 나를 알아가려는 노력을 계속해서 해나간다면 나의 이 불안과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어느 봄날의 밤.